며칠 전부터 사무실 근처에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H빔을 갖다 놓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다가 드릴을 갖다댈 때마다 H빔에서는 라면가락처럼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철의 이름을 알 수는 없다.
그냥
톱밥, 대패밥,그러니까 얘는 철밥.. 난 얘를 철밥이라고
부른다
철밥이 흘르고 있었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불꽃을 튀긴다
차마 근처에 가지 못하고 곁눈길만 주었는데,
마침 어제는 아무도 없었다.
철밥들이 공사장 주변에 깔려 있었다.
난 철밥들을 얼른 주웠다.
참 신기하게 생긴 것들.
다시는 이런 것들을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본 김에 데리고 가야지 싶었다.
얘들도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소에서 나왔을텐데...
내가 어디서 제철소 출신들을 만날 수 있을까?
기념촬영을 해주기로 했다. 나의 집에 온 기념으로...
지난 번 장미가지는 처음 왔던 순간을 찍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웠던 것을 기억하니깐,
우선 멋진 배경을 찾아야지...
그래서 첫번째 배경은 여기
내가 좋아하는 박항률화백의 그림에 철밥을 얹어 두었다.
내가 좋아하는 근사한 곳에 철밥을 두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니깐,
어울리나?
그리고 두번째 촬영배경
고찬규화백의 그림 [독백]을 배경으로 찰칵!
(우연히 인사동전시회에 갔다가 그분의 그림을 보고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었다)
양털방석위에 슬립차림의 여자가 참 희한한 표정이다.
대체로 이분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희한한 표정이다.
그런데 철밥과 너무 잘 어울린다.
난 찰떡궁합이라고 생각한다.
고찬규화백의 [불면도시]라는 그림 위에 철밥을 올려 놓아보았다
할 일없는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 더운 날의 저 남자를 마치 나의 철밥이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그림만 있을 때보다 철밥이 있으니까 덜 쓸쓸해 보인다.
덜 청승스러워보인다.
와~~~ 철밥이 출세했다.
그림 위에서 마치 연극배우가 분장을 한 듯하다
철밥이 점점 멋있어지고 있다.
진화하고 있는 철밥, 철밥은 변하지 않았고, 배경만 변했다.
그런데
.
.
.
.
오늘 퇴근길..
나는 공사장앞을 지나며 철밥을 찾았다.
철밥이 없다.
공사가 끝난단다. 그리고 쓰레기더미 속에서 철밥들을 만났다.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잠깐! 에피소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공사감독이 오더니 눈을 부라리며
"쓰레기 점검 나왔어요? 지금 치울거라니깐요."
"아닌데요..."
"그럼 그걸 왜 찍어요?"
"그냥... ...."
그리고 얼른 지나왔다
ㅋㅋ
흐음~
뭐랄까?
처음 H빔에서 철밥들이 나올때 누구는 큰 건물의 기둥이 될건데..
그런 기둥이 될 뻔한 것들은 자주 보기는 힘들지.
난 철밥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의 조상들은 대들보들이란다. 넌 뿌리있는 집안이야..."
그리고 난 장미나무가지처럼 나에게 꼭 필요한 어떤 것을 만들어야지 했었다.
좀 측은했다.
오늘 쓰레기 속에 있는 철밥들을 보면서,
참 사람하고 똑같구나
정말 줄 잘 못 서서 드릴 끝에 닿는 순간 철밥의 인생이 결정되고
내가 지나가는 순간 나의 손에 걸린 것들과 다음 날 철밥이 되어 나온 것들..
사람은 어디에서? 미국, 핀란드, 아프리카. 혹은 한국.. 참 다르게 산다
한국도, 지리산 어느 산자락 아래 그리고 서울의 강남 어디.. 참 다르게 산다
같은 곳에서 태어나더라도 어떤 부모밑에 태어나느냐
또
남자로 혹은 여자로
맏이냐 혹은 둘째냐 ....
이쁘냐, 안이쁘냐....
참 다르게 산다. 너무 다르게 산다.
참 많이 달라서 때로는 속상하고,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아무 생각없고 싶고
참 다르다
철밥을 보면서 사람하고 참 같다 생각했다
난 사람을 보듬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내 눈에 띄는 것들이 나에게 와서 멋있어졌으면 좋겠다.
참 다른 세상에서
박항률화백에 그림을 배경으로 있는 철밥과 고찬규화백의 그림을 배경으로 있는 철밥이
다른 느낌이듯이
그렇게 지금이라도 다른 환경을, 멋진 환경을 주고 싶다
이건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대들보가 되지 않았더라도, 훌륭한 화백들의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도 했는데
이제 다른 것도 가능해질 듯하다.
물론 내 손에 달려있지.
나의 손이 만들어낼 작품이 기다려진다.
며칠은 그렇게 내 옆에서 가만히 기다릴 것이다.
어느 순간 나의 손이 철밥에게 새로운 사명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일밖에 없으니까...
난 철밥들의 변신이 기대된다.
내가 다른 삶을 만들어 줄 철밥들의 변신.
언제쯤 가능할까?
기다려야지... 내 손이 움직이고 싶을때까지.
PS;다 좋은데 이 철밥에 손을 베엤다.
반드시 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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