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見聞錄

노추산계곡의 하루입니다

by 발비(發飛) 2005. 6. 7.
일단 제가 다녀 온 곳의 넓은 사진입니다.
이 곳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 있는 노추산 아래 계곡입니다.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입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2박3일을 잘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길이 막혀 새벽3시 30분 도착
그 곳까지 30분을 걸어 들어간 곳
잠을 자기를 포기하고 계곡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첫 사진
전 하루동안 몇 번을 이 곳에 왔다갔다
노추산계곡의 하루입니다
 
모두들 산에 올라간 시간
전 카메라를 들고 계곡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햇님을 나무가지 사이로 숨길 수 있는 곳에 누워 잠을 잤습니다
한 잠을 자고 나니 햇님은 세가지를 건너 옆으로 이사를 가있더군요.
딱 세칸 건너가지에 갈 시간만큼 전 잠을 잤습니다.
얼마를 잔 것인지는 모릅니다. 햇님이 세칸 건너갈 시간만큼....
 
그리고 저에게 말을 거는 것들에게 대답을 합니다.
사진으로.... 하루를 그렇게 사치스럽게...
 
새벽 6시
노추산 계곡은 깨고 있었습니다.
뿌옇게 잠을 걷어내고
아침을 맞으려 합니다
 
작년 저 곳에 갔을 때는 3월초 아주 추운날이었습니다. 계곡은 불투명비취색이었습니다. 그 색이 다시 보고 싶어 어둠이 걷히자마자 내려간 계곡은 비취색이 아니라 회색이었습니다. 회색처럼 명도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색이 있을까요. 회색들의 총조감표를 보는 듯 했습니다. 산, 나무, 안개, 물 모두 채색하지 않는 회색들, 회색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색인 것을, 그리고 회색이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는 색인 것을 그날 새벽 노추산 계곡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천천히 명도를 높이면서 품은 것들을 세상에 내어 놓는 계곡, 얇은 소음와 함께 하나씩 하나씩 세상에 내놓고 있었습니다. 새벽 계곡의 물소리는 낮았습니다. 물소리는 소곤소곤 세상에 보내는 어미의 당부의 말처럼 같은 말을 하고 하고 또 하고 했습니다. 똑같은 말을 하고 하고 또 하니 대답도 없이 휑하니 가버리는.... 조용히 회색을 거두는 계곡의 새벽.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매일 떠나보내는 계곡.
 
 
6월의 한 낮의 햇살은 검고 짙은 그림자를 떨굽니다.
한 낮인데
전 검은 그림자 찾아 다닙니다.
환하게 밝은 곳에서
검은 곳으로 빠른 걸음을 옮겨놓습니다.
검은 곳은 시원합니다.
서늘했습니다
 
계곡은 한 낮이 되면,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는 에스메랄다가 됩니다. 그냥 비치는 대로 비치도록 내버려둡니다. 더 이상은 가릴 생각도 숨길 생각도 없습니다. 알거든요. 가려도 숨겨도 더 이상은 없는 계곡. 그냥 도망갈 곳도 없이 꽉 차있는 햇빛들을 포기합니다. 햇빛들은 마음껏 계곡을 더듬어됩니다. 햇빛들이 모두 계곡의 물을 더듬으면 돌들은 잠시 숨을 가다듬습니다. 차갑게 자신을 식히며, 곧 다가올 뜨거움에 데이지 않도록 잠시나마 차갑게 식힙니다. 햇빛이 계곡의 물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전 햇빛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갑니다. 난 차갑게 식히고 있는 그들의 몸에 눕습니다. 차갑고 서늘함. 때로는 차갑고 서늘함이 상대를 데우기도 합니다. 전 차가움에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차가움에도 화상을 입을수도 있으니까... 곧 햇빛이 다가오자 전 얼른 햇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찾아갑니다. 버려진 첩실만이 짝사랑의 대상이 되는 어느 옛날 서자처럼...

 

저녁이 되자
계곡의 물소리는 요란합니다.
이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눈먼 이들을 위하여
소리를 키워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앞 못보는 이는 소리로 길을 찾습니다.
밤이 되어 저의 눈이 멀어지자
계곡은 소리소리 지릅니다.
"저리 가"
"저리 가"
"눈 밝아지면 와"
 
햇빛이 한바탕 휘젓고 간 계곡은 하루일을 끝낸 창부처럼 담배하나 물고 껄껄한 목소리로 자기를 보고 있는 나에게 말합니다. 저리가라고... 눈이 밝아지면 오라고... 담배연기를 모락모락피우는 저녁은 계곡에게는 새벽입니다. 껄껄한 소리로 내가 갈때까지는 자지도 쉬지도 않겠다고 소리만 냅다 지르고 있습니다. 창부는 자는 모습을 절대 보일 수 없다는 듯 말입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잠을 자지 않는 창부는 그들이 갈때까지 몇 날이고 악다구니를 하면서 가라고만 합니다. 전 그 저녁 계곡에서 나온 후로 계곡에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지 않으면 깊이 잠들 수 있을거라 믿으며 지금 계곡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오랜만에 아주 깊은 잠에 빠졌나봅니다. 그리워 그리워 못 견딜때까지 난 계곡에 찾아가지 않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창부가 자신의 몸을 부드러운 솜이불로 덮고 푹 잘 수 있도록... 아마 잊지 못하고 찾아갈겁니다. 그땐 저녁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계곡은 저녁에는 가지 않겠습니다. 계곡의 껄껄한 쇳소리가 나를 더 머물수 없게 하니 저녁에는 그녀를 만나러 가지 않겠습니다. 어둡지만 않으면 나에게 가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요...

'見聞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런 만남  (0) 2005.06.09
노추산 계곡의 그림자 이야기  (0) 2005.06.08
낙서  (0) 2005.06.02
철밥이야기  (0) 2005.06.01
장미나무이야기  (0) 2005.05.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