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거림

두통

by 발비(發飛) 2024. 7. 13.

생각을 멈추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생각이 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 

머리를 흔드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잠을 자야 생각이 멈춘다. 

지금 잠이 필요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이 멈추는 시간, 잠.

의식이 멈추는 시간, 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잠뿐인 듯 하다. 

 

어제는 두통이 너무 심했고, 병원에 갔다.

 

감정통제가 되지 않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지 며칠이다.

그냥 내달리기만 하는 생각과 감정, 어제부터는 두통이 시작되었다. 몸까지 합세한 거다.

생각과 감정, 몸. 

이것들이 '삶'을 건드리는 느낌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내 것들을 그냥 아슬하게 힘이 빠져 멈추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단어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길 매 순간 기도하고,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이 내 것이 아닌 듯 무심하길 기도한다. 

 

지금이, 혹은 그때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설득한다.

삶에는 수 많은 시간들이 있었고, 그 잊혀진 시간들이 선명하게 빛을 찾거나

그 잊혀진 시간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간 속에 빛나던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내 머리 속에 가득한 생각들, 단어들을 밀어내고,

환하게 빛나던 시간 속에 수많게 흩어져 빛나고 있던 나를 모아 한덩어리의 빛으로 만들어 

다시 살아갈 내 삶에 커다란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빛을 따라가 삶의 이어갈 수 있다고 이른 새벽, 나는 나에게 말한다. 

 

쪼개질 듯 아픈 머리, 뿌연 머리,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깊은 동굴 속 단어들, 

애니메이션처럼 빛을 잃어 사라진 것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순간들이 스스로 그 힘을 모아 살아나길, 

먼지구덩이 속에서 꺼낸 구슬을 옷에 문질러 닦아 영롱한 빛을 내고, 그 빛이 깊은 어둠의 동굴을 환히 비추고,

그 환해진 동굴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기를,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대신해서 저것들과 싸워주길 기도한다. 

 

오늘은 스페인 야네스 Llanes의 성페드로 길의 긴 산책을 생각하자.

지금과 같은 새벽,  깍어지르는 절벽 아래의 바다를 보며,  마주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서 했던 생각을 기억하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내 나쁜 시간들은 이 순간, 이 아름다움을 본 것으로 상쇄한다.' 

 

이미 상쇄된 것이다.

 

오늘 그것을 일깨워야 한다. 이 끔찍한 두통이 사라지도록.

 

https://www.youtube.com/watch?v=HFQebbbDMMo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목난로  (4) 2024.11.05
끝 여름  (0) 2024.09.05
거슬리는 것들에 대한 태도  (0) 2024.07.08
[고잉그레이2] 갈등이 시작되었다  (1) 2024.04.28
'쾌활' -쇼펜하우어  (0) 2024.04.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