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여름끝, 가을앞에 핀 나팔꽃이야기다.
꽃이 폈으니, 씨를 맺을 수 있을까? 했더니, 찬바람 부는데? 그랬다.
늦었다는 이야기지.
늦다.
그래서 늦은 나팔꽃이야기다.
1. 올해 8월에 맺힌 나팔꽃 씨를 받아다 작은 화분에 심었더랬다.
씨를 심은지 사흘만에 싹이 났고, 싹이 난지 이틀만에 줄기가 스스로 줄을 감기 시작했다.
3주만에 꽃 봉오리가 맺혔고, 꽃봉이가 맺히고 5일만에 나팔꽃 한송이가 피었고,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은 두 송이가 피었다.
두 송이 핀 줄기 아래 위에 잎마다 꽃봉오리가 맺혀있다.
이미 씨를 심었을 때부터 늦었다. 그게 걱정이었다.
바람이 서늘해지는데, 싹이 틀까? 싹이 튼 후에는 꽃이 필까? 꽃이 핀 후에는 씨를 맺을 수 있을까?
그건 우리들의 생각이고, 나팔꽃은 싹을 띄우고 꽃을 맺고, 피우고 하는 시간들을 순서대로 착실히 보내고 있는 거였다.
늦게 시작한 것들의 걱정은 사람과 꽃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것,
혹 그것이 안된다하더라도 하는 데까지 하고 사라지는 것, 경의를 표하게 된다.
2. 나팔꽃 화분은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 배수관 옆에 두었다.
사람이 오가지 않은 복도지만 나팔꽃 덕분에 눈을 뜨자 현관문을 열고 나가 안부를 챙기고,
외출했다 돌아올 때 현관문을 열기 전에 안부를 확인한다.
나팔꽃은 내게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딱이다.
3. 나팔꽃은 한해살이 풀이다. 풀, 나무가 아니라 줄기가 연하고 한 해를 살다가 죽는다.
그런 풀이 나팔꽃이다. 나팔꽃의 영어식 이름은 모닝글로리다. 아침의 영광! 멋진 이름을 가진 풀꽃이 나팔꽃인거다.
2주전쯤 마당집을 수리해서 카페를 오픈한 비플러스에 갔었다.
몇 년 방치되었던 마당이라 풀이 가득했고, 그 사이에 나팔꽃이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 덩굴져있었고,
나팔꽃에 포위당한 나무는 목이 졸린 듯했다. 그 마당에서 나팔꽃을 걷어내는 일을 한참했고, 가차없었다.
그 때 그 시간 나팔꽃은 풀이었을 따름이다.
집으로 돌아와 나팔꽃에 인사를 하며 낮에 수없이 걷어낸 나팔꽃 덩굴을 생각했다.
한해살이풀이 아니라면, 뿌리라도 살려서 옮겨심거나, 가지치기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했겠지.
그런데 한해살이라고 하지만 몇달만 살거라, 뿌리로 줄기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씨로 거듭나는 삶을 사는 나팔꽃은 걷어내어야 하는 거다. 순위에서도 밀려나는 것이다.
사람의 삶을 가벼이 여기고, 불교에서는 윤회, 기독교에서는 영생... 이런 것들의 관점에서 한해살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라느냐에 따라, 누구의 눈에 드느냐에 따라, 우리는 모닝글로리이거나, 걷어내어지거나, 어쩜 이렇게도 공평한지.
사람인 내가 다르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오늘 아침에는 그렇다.
-나팔꽃의 생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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