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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일기]집으로 복귀

by 발비(發飛) 2022. 6. 15.

 

금요일 오후에 갑자기 안동으로 갔었다. 

오전에 다니던 병원 의사가 평영도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팔을 돌리는 모든 행위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지난번에는 평영은 괜찮다고 했는데... 

내가 뭐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근근히 떠가는 건데도 그렇단다. 

 

주사 맞은 당일 수영은 더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그럼 안동에 가자. 

 

원래는 5월말에 엄마와 울릉도에 가기로 하였는데, 

엄마가 몇 년을 가고 싶다고 하더니 이제 시간도 나고, 몸 상태도 좋아져 가자고, 배와 호텔 모두 예약했더니,

겁이 난다며 안가겠다고, 근처 어디를 돌아다니자며 마음이 변해,

그러자고 했고, 그 약속이 남아있었다. 

숙제해결을 위한 안동행이었다. 

 

서울을 출발하며 안동집에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집에 없다. 

핸펀으로 하려다가 엄마가 어딜 가겠어? 밤이면 돌아오겠지, 맘 편하게 노시라고 더는 연락도 않고 그냥 갔다. 

단양을 지나서 영주 쯤에서 다시 전화를 했더니 막 들어오셨단다.

지금 거의 다 왔다고 했더니, 

왜? 그런다.  그냥, 그랬다. 

 

아침 일찍 병원 가느라, 갑자기 출발하느라 종일 굶은 터라 도착시간에 맞춰 내려와서 늘 가던 밥집에 가자고 했다. 

도착해서 올라오라는 말에 나는 집으로 올라갔고,

내가 좋아하는 그 밥집이 아니라 엄마가 좋아하는 밥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와 엄마는 참 안 맞는 사람인데, 의지를 가지고 잘 해나가는 중이다. 

안 맞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인데, 엄마는 간이 짠 음식을 좋아하고 그걸 깔끔하다 표현한다. 나는 짜다고 하고.

 

나는 아버지를 닮아 짠 것을 못 먹는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나보다 더 싱거운 아버지 덕분에 잘 먹을 수 있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고 부터는 엄마밥을 먹는 것이 좀 힘들다. 

엄마 그런 나를 술술하지 않다고 늘 재수없다는 듯이 보신다. 

아빠때문에 평생 자기 입맛대로 먹지 못했는데,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엄마 입맛에 맞게 음식을 하고, 드시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게 강요만 안한다면 딱인데 말이지. 

 

그래서 나름 절충된 것이 안동에 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서 밥을 먹게 되면 무조건 쌈을 먹는다. 

쌈을 좋아하니, 그냥 야채를 뜯어먹는 것도 좋아하니. 딱이다 싶다. 애매하면 쌈!

 

내 입맛이 평균보다 싱거워서 그렇다는 것을 아니까 할 말이 없다. 

엄마가 본인이 아니라 아버지를 닮은 딸을 만나 고생하는 거라고 이 또한 의지를 가지고 받아들인다. 사실이니까. 

 

-잠시 딴 소리 시작-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집에 가 점심을 먹는데, 밥을 차리면서  친구가 하는 말이 

-너때문에 국에 간을 거의 안 했어,

간이 거의 안 된 국을 먹자 평화로웠다.

-너무 맛있어. 평화로워. 엄마랑 힘들었어.

친구가 킥킥거리며,

-너는 못 먹는 것도 많고, 입맛이 별난데, 대신 싸서 쉬워 ㅋㅋ

-넌 쌈채소와 쌈장만 있으면 되잖아. 흙마당 상추 한 골만 심어놓으면 끝인데 말이지.

친구가 주말농장으로 쓰고 있는 시골집으로 가 상추와 이것저것 쌈채소를 잔뜩 따와 행복하게 먹고 있는 중이다.  

 

-잠시 딴 소리 끝-

 

입맛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아버지는 거의 무염에 가까웠다. 김치도 안 드셨다(나도 딱 한 젓가락만 맛있다).

명란젓에는 무를 잔뜩 넣어드셨고, 김치 대신 생채를 주로 드셨다. 외식은 당연히 싫어하셨다. 식당 음식이 대체로 간이 센편이니까.

특히 경상도는....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간다. 아들도 아닌 딸이 아버지 입맛을 닮고, 취미도 닮고, 점점 그렇다. 

 

-지금 생각난건데,

아버지 음식이 싱거운 것은 밥보다는 반찬을 좋아하신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는 밥 반공기를 드시면서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식사를 하셨다. 반찬 중심의 식사를 하셨으니 반찬이 싱거워야 했던 거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다. 나도! 

 

암튼, 내가 아무리 짠 걸 싫어해도 아버지에 비하면 나는 양호라고 했더니, 엄마는 너한테까지 맞추진 않겠다는 듯 대답도 않는다. 

아버지를 위해서 일생 따로 반찬을 만드셨어도 나는 안되나 보다. 

 

안동에서의 두번째, 세번째 날은 나는 엄마의 운전기사, 엄마가 말하는대로 다녔다. 

엄마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늘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 김영철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기행프로그램을 주로 본다. 

신문에 난 여행지 관련 기사는 꼼꼼히 스크랩을 해 두신다. 

그래서 아시는 곳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아버지가 편찮으시기 전에는 두 분이 진짜 많이 다니시더니..., 아버지가 얼마나 아쉬울까 싶다. 

여행을 하며,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하고, 삭히고 계시구나 알겠더라. 

엄마와 나는 다른 집 모녀처럼 그리 살가운 모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알겠더라. 

 

엄마에게 계절에 한 번은 이렇게 다니면 좋겠네 했더니, 엄청 반가워하시면서 본인도 어젯밤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의지를 가지고, 그렇게 하리라 스스로 약속을 해본다. 

 

너무 다행인거지.

앞서 걸어가는 엄마를 보며, 나보다 더 잘 걷네. 다행인거지. 

성격이고 입맛이고 다 안 맞는 이상한 모녀라도, 엄마가 안 아프고 잘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인거지. 고마워해야지.

워낙 규칙적인 생활, 자기 관리가 몸에 밴 분이라 건강한 편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 하고, 삼시세끼 정확한 시간에 드시고, 저녁 6시엔 꼭 세수해야 하고, 7시엔 성경필사시간이고, 10시엔 방으로 들어가셔서 주무실 준비를 하신다. 시계다. 

그러니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치아도 하나 상한데 없고, 수술도 한 곳 없고, 엄마의 규칙이 너무 답답했는데..., 다행인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 출발과 서울 도착까지 4일 동안 엄청나게 운전을 했다.

피곤했는지 어젯밤은 10시에 잤더니, 오늘 아침 일찍 깼다. 

청소를 하고, 오랜만에 카페오레를 맛나게 마시고 책상에 앉으니

제자리로 돌아왔구나 싶었다. 

겨우 4일, 내가 아니라 엄마의 시간을 살다와서 그런가, 아주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좋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엄마에게 딸이 혼자 살았던 시간만큼 앞으로도 살아야 하는데, 이젠 혼자가 지겨우니 괜찮은 사람 물색을 해보라고, 조용한 마당집은 혼자 무서우니 더불어 살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고, 내 재주로는 안되니 엄마가 온 사방에다 알려달라고 했더니,

 

또 대답을 안했다. 엄마는 곤란하면 대답을 안 하고 딴소리를 한다. 

온 사방에 알리려나, 안 알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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