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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나는,

by 발비(發飛) 2022. 6. 19.

나는 차분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차분함과 차가움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어제는 지연이가 내가 엄마처럼 말이 빠르다고 했다.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 

그러고보니 그렇기도 하다. 

엄마가 늘 급한 건 아니지만 암튼 급한 성격과 동반하는 빠른 말을 나는 엄청 싫어하는데,

내가 닮았다니.. 나도 어느 정도 인정이 된다니...

그게 싫으니까 뭐지. 하고 생각하다 알아낸 것.

엄마 이야기를 할 때, 엄마처럼 말이 빨라지고 격해지는 거였다.

 

<잠시 딴 소리>

 

지연이는 엄마 고모의 손녀다. 

엄마의 고모가 지연이 할머니시다. 

어른들은 지연이와 나의 촌수를 3월성(越姓) 6촌이라 했다. 

모계 쪽으로 姓을 세 번 건너는데 촌수로는 6촌인거다. 

지연이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아버지는 엄마와 그 할머니가 판박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지연이와 나는 취향이나 성격이나 닮은 점이 많다고 얘기하며 모계 혈통의 유전자가 겹쳐서 일거라고 이야기한다. 

 

<잠시 딴 소리 끝>

 

알았으니, 싫은 건 하지 않겠다. 

엄마에게 아주 골 깊은 원망이 아직 남았으나 의지를 가지고 잘 하기로 했고, 엄마가 가진 여러 장점은 배우고 인정하기로 했으나 아직 마음까지 닿지 않았다. 엄마 앞에서의 태도는 바꼈으나 지연이와 이야기할 때는 여과 되지 않은 감정들이 드러나고 만 것이다. 

부끄럽다. 

 

내 삶의 목표 중의 하나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것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 진화된 사람으로 생을 마치자' 

 

어떤 이는 죽을 때  살아가면서 부딪힌 것들 때문에 태어났을 때보다 죽을 때 더 모가 나고, 상태가 안 좋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래저래 더하기 빼기를 하다보면 가지고 태어난 것과 비슷하기도 한데,  

나는 한 치라도 더 나아지는 것을 이 생의 목표로 삼았다. 

 

물론 이건 주관적이겠만 그렇더라도 의지를 가지고 한 치라도 나아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에 품고 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을 풀기로 했던 계기가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지연이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엄마라는 지옥'에 갇힌 것 같다는 뜻의 말이었다.

거기에서 벗어났으면 한다는 진심어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내가 엄마에게 내 마음에 있는 지옥들을 말하면,

엄마는 분명히 사과를 할 거 같으니 그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했다. 

 

깊이 생각한 내 결론은 어쩌면 여전히 엄마라는 거대한 지옥을 맞설 용기가 없어서일지 몰라도,

엄마는 기억하지도 못할 내 상처들을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냥 덮는다, 이다.

대신 나는 나를 믿고 스스로 회복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엄마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 내 삶과 내 삶을 함께 나눠온 친구들의 염려를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또 딴 소리>

 

<우리들의 블루스>  동석은 옥동을 향한 분노는 주체할 수 없을만큼 차고 넘친다. 동석의 친구들은 동석을 이해하지만 옥동의 편에서 동석을 다그친다. 동석을 이해하지만 둘을 두고 동석의 편이 되지는 않는다. 옥동은 늙었고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약자이기 때문이다. 동석이 약자였던 어린 시절, 동석은 옥동을 마주할 때면 여전히 그 약자의 시간 속에 있다.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인 것이다. 나는 동석의 마음에 공감했다. 옥동의 병을 알고, 동석은 온 힘을 다해 의지를 가지고 목포로 동행을 한다. 상반된 감정들의 레이어, 동석의 마음으로 몇 번이나 울컥했다. 동석은 결국 약자였던 때의 자신과 옥동을 이야기한다. 옥동은 저 너머 이야기처럼 동석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답도 표정도 없다. 동석이 그런 옥동을 보고 입을 다문다. .... 옥동이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숨을 거둔다. 된장찌개 하나에 일생의 원망이 상쇄되는 듯, 죽은 옥동의 품을 파고 든다. 동석이 불쌍해서 펑펑 울었다. 나도  결국 그럴 것 같아 펑펑 울었다. 엄마가 잘못 했으면서 나는 의지를 가지고 엄마를 위해 잘 해야 하고, 엄마는 내게 준 상처의 깊이를 모르고, 나는 결국 동석처럼 펑펑 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엄마보다 내가 더 빨리 죽었으면 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된다. 엄마한테 너무 한 일이라서, 오빠도 엄마보다 일찍 저 세상으로 갔는데, 나도 그러면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안된다. 

 

<잠시 또 딴 소리 끝>

 

나를 믿고, 또 하나의 의지를 더한다.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과 함께 엄마에 관한 말들 또한 덮겠다는 것,

여기까지 해야만 나는 엄마의 강을 건널 수 있다.

엄마의 강을 건너야겠다. 내 삶이 끝나기 전에 그 강을 건너고 말겠다. 

엄마때문에 보낸 지옥의 시간들을 내 삶의 남은 시간에도 보내고 싶지 않다. 깃털처럼 가볍게 그 시간들을 날려주겠다. 

 

엄마의 삶 또한 인정하기로 한다.

엄마의 삶에서 '나'를 뺀다면 훌륭한 면이 분명 있다. 닮고 싶은 엄마가 강 건너에 있다. 

 

나를 응원한다. 힘을 내라. 

엄마 이야기를 해도 남의 일처럼 차분히 말할 수 있는 날이 이 생에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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