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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방문] 남의 집

by 발비(發飛) 2021. 9. 3.

 

본채 마루에선 집주인이 봉견한복을 두루마기없이 마고자바람으로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속옷바람도 아니고 마고자바람, 대체 언제 들었을까? 

내가 보기엔 화려하기만한 비단한복을 잘 차려입은 친적아저씨를 두고 엄마는 두루마기도 없는 마고자바람으로...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참견하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막 떠올랐다.

 

그보다 먼저는 엄마처럼 나도

 

'마고자바람으로....,'

 

집주인의 말을 흘려들으며 딴짓을 한다. 본채 건너편의 방들이 쪼로록 있는 바깥채를 그리기 시작했다. 

 

주로 객이 머물렀을 바깥채 벽에는이 집 것이 아니라 다른 집안에 내린 교지가 걸려있었다.

자신들은 벼슬을 할 수 없어서 다른 집 것을 얻어다 걸어보았다고 집주인이 말해줬다. 

크게 장사를 해서 부자였다고 했다. 

바깥채의 기둥에는 예서로 전각된 7언절구의 한시가 한소절씩 네 개의 기둥에 나눠서 걸려있었는데,

주인은 어떤 묘비의 글씨들을 탁본해 그 서체를 빌어 전각을 한 거라고 했다.  예쁜 서체였다. 

 

한자를 기둥부분에 얼기설기 대충 그려넣었더니,  

뭔가 잘 그린 것처럼 좋아보였다. 

 

주인의 이야기는 흘려들으며, 다 그렸는데도 아직 주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주 부자 최씨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시다. 

 

말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신듯 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모두가 이야기가 되시는 분들은 책을 쓰고 싶어하신다. 

꽤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쓰고 싶어요 라고 말했더랬다. 

 

 

눈을 돌려 댓돌 아래 핀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리꽃, 상사화 비슷하게 생긴 꽃은 여름꽃인지 지기 시작했다. 씨를 내리겠지. 

내년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내 피었다가 가을이 시작될 즈음 꽃을 떨구겠지. 

마당 한켠에 피운 몇 송이의 꽃이 이쁘다. 

 

꽃은 귀하다. 

꽃은 온힘을 가장 아름다운 생의 한 순간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는 각자의 모습을 그 꽃을 떨군다. 

벚꽃은 흔적없이, 

목련은 온 무게를 다해,

동백은 산 모가지채로,

.마당에 핀 저 꽃은 꽃자루에서 색을 바래며 서서히 진다. 

 

꽃밭 가득한 마당에 살면,

계절마다 해마다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다보면

제각각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에 대해 꽃지는 것을 보듯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죽음 또한 그렇게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벚꽃의 모습이던, 동백이던, 목련이던, 내가 피웠던 꽃 모양대로...

그래서 꽃이 귀하다. 

 

옆자리 여자분은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퇴직하셨다고 했는데, 

마고자바람으로..., 라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집주인과 안주인이 하는 말마다 감탄을 하며,

집과 집안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듣고계셨다. 

 

두 개의 그림을 다 그렸을 때쯤 집주인과 안주인의 이야기를 정성스레 듣고 계신

옆자리 그 여자분의 좋은 마음이 좀 부럽기도 했다. 

다음에는 나도 그렇게 해야지. 

저 분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겠다.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꽃처럼 이쁘다는 생각을 했다. 

 

2주전 방문한 남의 집에서 그린 그림 이야기다. 

 

 

-잠시 딴 얘기-

 

오랜만에 노트20으로 그림을 그렸다. 

노트2부터 노트시리즈를 산 것은 가끔 그리는 그림때문이었는데, 노트20을 사고는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아

만약 다음에 핸드폰을 산다면 노트는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말았네. 에고. 어쩌지.

그때 생각하자. 

 

-잠시 딴 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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