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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가을에 핀 봄꽃

by 발비(發飛) 2020. 10. 6.

봄꽃 중에 봄꽃, 벚나무에 벚꽃 봉오리들이 가득 맺은 걸 보았다. 

어제 출근길 자유로 벚나무 어느 한 그루에 핑크빛 봉오리를 보고 눈을 의심하고는, 출판단지 진입 5킬로미터 전인 것을 확인하였다. 
오늘 출근길 그 지점 지날 즈음 최대한 갓길 쪽으로 붙어 꽃봉오리들이 맺힌 벚나무를 찾기는 쉬웠다. . 
갈색으로 물든 나무들 사이에 분홍빛 꽃봉오리는 눈에 잘 띄었다. 


아주 오래전 성철스님이 돌아가신 다음해인가, 마지막에 머무르시던 백련암을 간 적이 있었다. 

백련암 마당 한켠에 빨간 장미가 피기 직전에 얼어있었다. 
5월에 피어야 할 장미가 아마 11월 즈음에 핀 모양이다. 
많이 빠르거나 많이 늦거나 움을 틔우고,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다 추운 겨울을 만나 그대로 얼었다. 언 장미는 자주빛이었고, 작았다. 작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참을 언 장미를 보고 있었더랬다. 산중이라 바람이 매섭고 날을 더없이 차가웠다.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겨울에 피어 얼어버린 장미 앞에서 춥다고 몸서리를 칠 수도 없었다. 손으로 감쌀수도 없었다. 내 체온에 꽃잎은 짖무르듯이 녹아 참바람에 흩어질 것이 뻔했다. 어쩌지 못했었다. 

 

한 겨울은 아니라 다행이다.  
한그루의 벚나무가 여러 송이 꽃봉오리를 맺었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무엇보다 크지 않은 꽃이라 다행이다. 
이른 봄이 아닌 한창 봄이거나 여름에 피는 꽃은 꽃잎이 크고 두껍다. 
꽃잎이 흠뻑 물기를 품고 있다. 두꺼운 꽃잎이 얼면 꽁꽁 얼면, 무게에 못이겨 떨어질테고, 부러질 것이다. 짓이겨질 것이다. 
큰 꽃이 아니라 작은 꽃이라 다행이다. 
얼다 녹아도, 얼다 떨어져도 찬바람에 새처럼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새처럼 날다가 저멀리 어디에서 떨어지더라도 살포시 얹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가을에 꽃봉오리 맺은 벚나무에서 남은 출근길 5킬로미티를 달렸다. 

별일 아니다.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제 때에 피고 지고
함께 피고 지고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
.

막 출판단지 입구에 들어섰을 때 핀 개여뀌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얘들아. 할 수만 있다면,

제 때에 피고 지고
함께 피고 지고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성철스님이 생각나서)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들에 미쳐 칼날 위에 춤을 추듯 산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실행 없는 말은 천번 만번 해도 소용없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베풀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고르면 아무하고도 상관없다. 
덕 보겠다는 마음으로 고르면 제일 엉뚱한 사람을 고르게 된다. 

세가지 병을 조심해야 한다. 이름병, 재물병, 여색병이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이름병이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지니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대나무가 가늘고 길면서도 모진 바람에 꺽이지 않은 것은 속이 비었고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법은 죽지 않을정도로만 먹고 옷은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됐고, 공부는 밤을 새워서 하라. 
도의 길은 날마다 덜아가는 것이다. 
덜고 또 덜어 아주 덜 것이 없는 곳에 이르면 참다운 자유를 얻는다. 

시간은 자기 생명과도 같다. 
잃어버린 건강은 음식으로, 잃어버린 재산은 근면검소로 회복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시간은 회복할 수 없다. 

참으로 사는 첫 걸음은 자기를 속이지 않은데 있다. 
배움의 길은 날마다 더하고, 도의 길은 날마다 덜어간다. 
덜고 또 덜아 아주 덜 것이 없는 곳에 이르면 참다운 자유를 얻는 다. 
자기의 과오만 항상 반성하며 고쳐나가고, 다른 사람의 시비는 절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림 속의 떡은 아무리 보아도 배부르지 않고, 그림 속의 사람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절해서 업 녹는 걸 눈으로 본다면, 절하려는 사람들로 가야산이 다 닳아 없어질 것이다. 
만사가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어 무슨 결과든지 그 원인에 정비례한다. 

나를 위하여 남을 해침은 곧 나를 해침이고 남을 위하여 나를 해침은 나를 살리는 길이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라. 그것이 참 불공이다. 
한 부엌에서 은혜와 원수가 나는 것이니 내 주위를 잘 살펴야 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원수가 되며 은혜가 될 수 있겠는가?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남편), 자식, 형제, 친구, 선후배가 원수가 되는 것이다. 
한 부엌에서 원수가 아닌, 은혜가 나는 행복한 삶을 살도록 관대함을 가져야 한다. 

자기자신은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다. 
생이란 구름 한 점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구름 한 점 흩어짐이니 있거나 없거나 즐거이 사세. 
웃지 않고 사는 이는 바보라네. 

 

-성철스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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