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모니터 앞에 붙여둔 말이다.
아마 6개월쯤 전부터.
파커 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원제 Let Your Life Speak' (당신의 삶이 말하도록 내버려 두라)를
모두 읽지는 않았지만, 끌리는 말이다.
파커 J. 파머의 책이 하나 더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
나는 이 둘을 붙여서 내 격언으로 삼았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어쩌면 삶에 대한 오만방자한 말일 수 있겠다 싶지만, 나는 그 오만방자함에 한 표를 던져본다.
파커 J. 파머는 우리가 어떤 가치나 이상을 품고, 의지를 가지고 노력해서 달성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선택하고 노력한다. 실패 혹은 실수를 하면서 인생에서 큰 배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온 힘을 다해 다시 목표를 세우고, 선택하고 노력한다. 그렇게 반복한다.
그러다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딘가로부터 점점 멀어짐을 느낀다.
그 어딘가는 행복이기도 하고, 평화이기도 하고, 자유이기도 하고,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소명(이 단어가 종교적인 느낌이라 맘에 안든다.)
소명이라 하지말고, 그냥 원천의 삶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냥 라이프(삶).
그는 우리에게 의지로 인생의 무엇인가를 선택하기 이전에 , 태어나면서 부터 받은 어떤 자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 자질을 바탕으로 한 삶이 이미 주어졌으므로, 그 삶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삶이 방황하는 나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사인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가슴 속에 있는 온전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일에 몰두하기도 하다가도,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일 사이사이에 끼어든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성실성이나 집중력에 대해 생각하며, 스스로를 몰아쳤다.
타인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이 말을 보았을 때, 나는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 그 말을 붙였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 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중에서
사회 속에서 일하는 나는 결코 개인의 나와 떨어질 수 없다.
'개인의 나'는 사회 속의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믿음부터 단단히 세워야 했다.
'사회 속의 나' 혹은 '나의 삶'을 건강하게 발전하도록 잘 관리해서 풀어 나가는 것이 이 사회에 대한 나의 직무일 것이다. 라는 깨달음.
늘 노력한다.
나는 나의 삶을 받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이제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바닥을 알 수 없는 진흙탕 같은 삶을 맞닥뜨리게 되면,
가만히 집중한다.
어느새 진흙은 가라앉고,
윗물은 맑아지고 가라앉은 진흙의 실체는 드러난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물, 저 밑에 진흙있고, 진흙 사이에 끼인 모래도, 몇 개의 큰 자갈도 있다.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삶이 내게 보내는 사인인 것이다.
그러다 또,
자의 혹은 타의로 또 다시 진흙탕이 될 것이다. 또 가만히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반복하며 삶은 완성되어 갈 것이고,
삶의 완성은 내가 태어난 모습 그대로가 될 것이다.
나는 나 자신과 삶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생이 끝날 때까지.
.
.
.
이런 생각은,
오늘 아침, 그의 안부 메신저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오랜만이다. 아마 일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주 오래 전에 '그 때의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사람이다.
그 사랑을 할 때, 나와 내 주변은 마치 자이로드롭 같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지른 비명들은 내 삶의 단단한 씨줄 혹은 날줄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고, 점심 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어쩌면 그는 아직도 그때의 시간인지, 여전히 별일이 없는지 궁금해하고, 끼니를 챙긴다.
나는 그에게 '단순하고 평화롭고 착하게 잘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가 시크해졌다고 말한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다음 주에 점심을 먹기로 약속을 하고 메신저를 끝냈다.
내 삶에 끼인 작은 차돌 하나를 진흙 사이에서 본 듯하다.
나는 다시 가지런하고, 고요해졌다.
더불어, 어제의 낮에 있었던 회사에서의 복잡함과 지난 밤 천둥번개와 함께 왔던 두려움도 함께 사라지는 중이다.
나를 발견하고, 내 삶에 적극 참여해
어제의 복잡함과 두려움이 나의 삶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삶도 위협하지 않도록 말이다.
.
.
.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운동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완전히 참여하는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기 안에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한 빛 뿐만 아니라 깊은 어둠의 유산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오직 상상속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 평화 그리고 모두를 위한 정의를 계속 꿈꿔야 한다.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를 위한 정치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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