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지하철 9호선, 發飛>
남자의 백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출근길이던, 퇴근길이던 지하철 9호선은 1센티의 틈도 없이 서로에게 끼여있다.
지하철 성추행 사건이 가끔 뉴스에 나올 때, 서로 1센티의 간격도 없이 끼어있는 9호선은?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끼어있는 상태보다 더 최악인 상황은 남자들의 백팩이다.
백팩을 맨 남자가 앞에 서 있고,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밀고 들어가 1센티의 간격도 없이 끼일 때,
나의 상반신과 하반신은 앞에 백팩을 맨 남자로 인해, 적어도 그 백팩의 두께만큼 꺾인 상태가 되고 만다.
때에 따라 허리가 앞뒤로 꺾인 채, 때로는 어깨가 오른쪽 왼쪽으로 휘어진 채 그냥 견뎌야 한다.
그것이 백팩을 멘 어떤 남자들의 잘못이겠는가?
9호선 전철이 이따위인 것을 탓해야지, 하면서도 드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저 백팩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대충 남자들의 30%이상은 커다란 백팩을 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여자들이 쇼퍼백이라고 해서 뭐든지 넣는대로 들어가는 커다란 백에 뭔가를 가득 넣고 다녔다.
화장대 전체를 쓸어담은 듯한 커다란 화장품 파우치를 필수이고,
각자의 살림이 들어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건을 떼어다 파는 상인 같기도 하고, 그랬었다.
여자들이 한창 없는 것이 없는 쇼퍼백을 들고 다닐 즈음 남자들은 백팩을 많이 메지는 않았었다.
핸드폰과 지갑을 앞 주머니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지.
요즘 남자, 대체 저 커다란 백팩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회사에 컴퓨터가 없는 걸까?
개인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나?
아님 저 모든 사람이 학생인가?(그건 아닌 듯, 학생과 직장인 아우라가 다르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요즘 여자들은 작고 앙증맞은 크로스백, 그야말로 핸드백을 옆으로 메고 다닌다.
유행이란 것이 이상해서 커다란 쇼퍼백을 든 사람을 가끔 보면, 눈에 낯설기도 하다.
궁금하다.
남자들의 네모진 저 백팩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내 허리를 꺾고, 어깨를 비틀고, 다리를 대각선으로 버티게 하는 저 백팩에는 뭐가 들었길래,
서로에게 끼어서 1센티의 간격도 없는 9호선 전철에서 고통 중에 한 몫을 하는지,
그들 각각의 속을 알지도 못한 체, 볼멘 소리를 한다.
늘 궁금하다. 뭐가 들어있을까?
어쩌면,
남자의 백팩이 납득이 간다면,
이런 저런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들이 남자의 하루가 원활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저 백팩에는 뭐가 들어있을까?'라는 궁금함이 매일 아침 들지 않는다면,
백팩을 멘 남자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할 남자들에 대해서도 더는 '궁금함'으로 성가시지 않을 듯 하다.
그림은, 2015년 늦은 퇴근길.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지옥은 아니었던 9호선 전철 자리에 앉아 슥슥 그렸던 9호선 사람들이다.
내 눈에 그들은 웃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 되고 말았다.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9호선 에세이] 뮤즈 (0) | 2019.06.27 |
---|---|
상향적 고통을 향한 노동열차 탑승 (ft.이케아 FRAKTA) (0) | 2019.03.25 |
북극성 (0) | 2018.10.11 |
눈물-떠났다 (0) | 2018.09.14 |
가수면(假睡眠)이 준 사인(sign) (0) | 2018.09.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