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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상향적 고통을 향한 노동열차 탑승 (ft.이케아 FRAKTA)

by 발비(發飛) 2019. 3. 25.

 

금요일 저녁 퇴근한 뒤 일요일 자정까지 쉬지 않고 노동을 했다. 

 

지난 주는 이래저래 회사일 많았다. 

일의 반이 사람인데, 주변의 사람들과 어쩐지 덜그럭 거리는 듯하여 수선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머리속에서 들리는 쓸데없이 소리가 성가시고, 그 소리들을 모두 잠재우고 싶었다. 

분명하다. 힘든 것이 아니라 수선스러웠다. 

 

1. 쁘띠목도리

 

집으로 오자 바로 씻고, 

늘 내 곁에 준비된 뜨개질 바구니를 끌어당겼다. 

나는 늘 무념무상으로 뜨개질을 할 준비를 해 둔다. 

무념무상이 핵심이다. 

 

 

-잠시 딴 소리-

 

늘 뜨개질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내 곁에는 뜨개질 바구니가 있다.

대바늘도 있고, 코바늘도 있다. 

어떤 것은 1년이 되어도 미완성인 채 늘 일거리로 남아있고, 

어떤 것은 하루에 끝내버리기도 한다. 

한 달쯤 전에는 1년을 바구니에 있던 스툴 커버를 드디어 완성을 해서 

두 개의 스툴은 같은 커버때문에 세트가 되었다. 

하나만 더 뜨면, 출신은 다르지만 3개짜리 스툴세트가 될 예정이다. 

몇 년 전에는 퀼트도 같이 있었는데, 이젠 눈이 아파서 퀼트는 못한다. 

 

-잠시 딴 소리 끝-

 

 

 

 

 

바구니에는 쁘띠목도리를 뜰 폭삭한 실과 4.5미리 대바늘이 대기 중이다. 

만드는 데 딱 하루가 걸리는 쁘띠목도리를 친구들 생일선물하고, 이번엔 내 차례다. 

친구에게는 갈색으로 하나씩 선물했지만, 

나는 두 개, 검은색을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낮까지, 갈색을 토요일부터 일요일 낮까지 떴다. 

이제 더 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떴다. 

완성한 목도리들이다. 

 

 

 

 

2. 수저보관주머니

 

양식수저, 한식수저가 몇 세트가 있다. 

그것들은 대충 세트별로 주머니가 생길 때마다 크기가 들쭉날쭉한 채 싱크대 서랍에 보관했었다. 

가끔 꺼낼 때마다 언젠가는 헝겊 수저통을 만들어서 정갈하게 보관해야지 했었다. 

그걸 시작했다. 

수저에 비해 엄청 큰 주머니를 해체하여, 잘 다리고, 한 세트가 들어갈 만한 크기로 잘라서 미싱으로 박았다. 

대충, 아주 대충..., 

양식 세트 2, 한식 세트 2, 나무로 된 수저 1, 티스푼 1 여섯개를 만들었다. 

너무 대충이라 볼품은 없었다.  

담에 이쁜 색 스트링이라도 넣어야겠다. 

 

수저보관주머니를 만들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맘에 안 들었는지, 지쳐서인지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했다)

 

 

3. 쇼핑백 리폼

 

이사를 할 때, 3주 가까이 걸리는 집 수리 때문에 이삿짐센터 컨테이너에 짐을 맡겨 두어야 했었는데, 그게 엄청 찝찝했다. 

이왕 보관하더라도, 좀 깨끗하게 보관하기 위해 이케아의 커다란 가방을 여러 개 주문해서 짐을 잘 챙겨넣어서 보관했었다. 

이케아 FRAKTA 시리즈 중 제일 큰 커다란 가방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재질도 맘에 들고, 색도 맘에 들고, 활용을 해 보기로 했다. 

제일 큰 가방을 반으로 잘라서 같은 시리즈에 있는 장바구니보다는 좀 작은 장바구니를 만들기로 했다. 

 

일단 손잡이들을 모두 떼어내고, 

두 개의 지퍼를 아래에 하나, 위에 하나로 분리한 뒤, 

가운데를 중심으로 크기가 차이가 나게 위 아래로 잘랐다. 

자르고 보니, 더 뜯지 않아도 손잡이만 붙이면 될 것 같아. 그대로 진행.

잘라낸 부분을 접어서 깨끗하게 마무리 하기 위해 손바늘을 했다. 

처음에는 재봉질로 시작했는데 자꾸 실을 먹어서 그냥 한 땀 한 땀, 그러나 대충대충. 

손잡이는 혹시 물건을 담아서 오다 손잡이가 떨어지면 안되니까, 

엄청 여러번, 꼼꼼하게.

두 개 모두를 완성하고 나니, 일요일 자정을 넘어 월요일 새벽 한 시가 되었다. 

 

 

 

 

 

 

2박 3일간의 대단한 노동열차였다. 

 

출근을 해야 하니까.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눕고 보니,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 싶었다. 

바로 이거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모든 업무가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할 정도로 내 머리는 텅 비었다. 

 

내게는 너무 잔인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다. 

고통은 더 강한 고통으로 이겨낸다. 

다만, 상향적 고통이어야 한다. 

불평을 하지 않기 위해, 다른 일에 몰두하고, 다른 일에 결과물은 내게 유익하다. 

이런 걸, 취미라고들 한다. 

 

간만에 기술 들어갔던 주말이다. 

월요일이 제법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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