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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용택] 울고 돌아온 너에게

by 발비(發飛) 2017. 12. 29.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2017년 마지막 근무일이다. 


그제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52명 수강생들의 성적 평가와 입력을 마쳤다.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때 모두 마치려고 했는데,뜻대로 되지 않아 그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게으름과 집중력 부족.

밤새 학생들이 열심히 혹은 대충 작성한 레포트들을 읽었다. 

52명*10장=520장 

A4 520장이면 원고로 따지면 2,3천매 가까운 원고다. 

제출을 하지 않은 학생이 두 명이나 되었다. 

전에 없던 일이라 좀 당황했다. 

이번 학기는 수강생이 많아 그런 거려니 하고 왜 안 낸 걸까, 하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두어시간 자고 출근을 하니 머리가 멍했다. 


어제 오후에는 중요한 작가 미팅이 있었고, 저녁에는 회사 직원 송년회였다. 

새벽까지 놀았다. 

맥주로 시작해서 맥주로 끝났고, 

다른 해와는 달리, 선물 교환하기도 하고, 빙고 게임도 하고, 노래를 불렀고, 춤도 췄다. 

다른 부서에 비해 인원이 작은 우리 부서와 디자인팀, 제작팀이 한 팀이 되었다. 

편집부에서 파견 나온 대리가 머리를 잘 써서 빙고 게임에서 두 번이나 이겼다. 

우리 팀은 신세계 상품권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한동안 이마트 편의점에서 커피는 이것으로 마시면 될 듯. 

음치인데, 소환되어 노래를 불렀다. 

감성 어필에 성공하여, 또 상품권을 받았다. 

먹고, 놀고, 마시다가 마구 노는 시간이 되어. 여기 저기서 수다, 

수다에 개의치 않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 

나는 왔다 갔다 하면서 수다도 떨다가, 노래가 맘에 들면, 따라 부르고 멋대로 춤도 췄다.

새벽까지 버텼다. 

인사치레를 해야 할 작가들 없이, 우리끼리 노니까 편해서 신났다. 


올해 코믹버전으로 반성할 일 한 가지씩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만으로도 아버지 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짜증냈던 것만 생각나 눈물이 몇 번이나 왈칵 쏟아졌다. 

순서도 되지 않았는데, 

양쪽 옆에 앉은 동료가 절대 눈물버전은 안된다며, 일년 동안 놀림거리가 될 거라며 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줬다. 

나는 올해 술을 많이 먹지 않은 것을 반성했다. 

안 울기 성공.

울었으면 어쩔뻔 했어. 


어젯밤에 마신 맥주 탓에 겨우 일어나 출근을 했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문장에서 온 김용택 시인의 시 한 편이 있다. 

딱 오늘에 맞는 시라는 생각에 옮겼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그래, 우리는 꽝꽝 언 들을 헤매었다. 

오늘 저녁에 엄마한테 가면, 엄마가 따뜻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줬으면 좋겠다. 

아니다. 

내가 손을 따뜻이하고, 남편이 없어진 엄마의 얼굴을 감싸줘야겠다. 

그게 낫겠다. 

그리고, 엄마한테 나도 해 달라고 해야겠다. 

동생한테도 그렇게 해주고, 

올케한테도 그렇게 해주고, 

조카들에게도 해줘야겠다. 


모두들 기가 막혀하며 빈정거리겠지. 

그래도 좋아할 것이다. 


동생가족은 내일 엄만한테 온다고 했다. 

연말에만 하는 조카들 선물도 준비했다. 

우리는 아버지 없는 첫 새해를 맞을 것이고, 첫 여행을 할 것이다. 

아버지가 앉으시던 운전석 옆 자리는 엄마가 앉을 것 같다.  

그래서 자리가 좀 넉넉할 것 같다.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하고 종무식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났다. 

데일리 다이어리와 탁상용 달력에 꽉 찬 메모들이 올해가 실존했다는 증거다. 

다이어리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아직 2018년 다이어리는 준비하지 못했다. 

새로운 탁상용 달력은 무림제지에서 나온 것으로 그냥 저냥 써야겠다. 

그냥 저냥 살 준비를 하는 것을 오늘 업무로 잡아야겠다. 







-잠시 딴 소리-


2018년 내년 목표 중에 하나는 그냥 저냥.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냥 저냥,

물건을 쓰는 것도 그냥 저냥,

생각도 그냥 저냥


그럴 생각이다. 

그냥 저냥을 생각한 것은 물건을 사는 것 때문에 생각한 말인데, 

소비를 좀 줄이기 위해서, 

시간을 좀 덜 들이기 위해서이다. 

맘에 드는 물건을 사는 일이란, 돈과 시간의 소비가 너무 많다는 것을

2017년에 이사를 하고, 집을 고치면서 절감했다. 

안달 복달이 아니라 그냥 저냥.


그래서 융자를 차근차근 갚아야지.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도 되고, 맺지 않아도 된다. 

애쓰지 않을 거다. 결국, 삶에서 남는 것은 자존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나만이 내 존재의 희노애락의 주체일 것이다. 

나의 희노애락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기로 한다. 

그냥 저냥 애쓰지 말고 관계를 성글게 하고 싶다.


2018년 마음 목표-그냥 저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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