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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한용운] 나는 잊고자

by 발비(發飛) 2017. 12. 26.

나는 잊고자


한용운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을까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되고

끊임없이 생각생각에 님 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내가 처음 사서 가슴에 안고 잔 시집은 한하운의 [보리피리]라는 시집이었고, 

두번째 산 시집은 한용운 [님의 침묵]이었다.


고등학교 때 이 두 시집을 읽고, 가슴이 아팠다. 

사랑을 하지도 않았을 때고, 

세상을 알지도 못했을 때고, 

사람들을 알지도 못했을 때였다. 

그런데, 가슴이 아파서 이 시집들을 가슴에 안고 잤다.


자다가도 시집이 가슴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시집 위에 두손이 풀어지지 않도록 깍지를 끼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때와 같이 오늘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일까?


뜬금없이 한용운의 시를 그때처럼 소리내어 읽고 싶었다. 

퇴근길에 혹시 지난 번 책들을 정리하면서 혹시 쓸려 가 버리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다.


다행이다. 있다. 

얼른, 나는 내가 어디쯤에서 가슴이 아픈지 알아야 했다. 

시집을 책장을 넘기면서 더욱 가슴이 아파오는 곳에 머무른다.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힐까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이별의 편지를 두 번 썼다. 

두 번 다 보내지 못했다. 

두 번 다 전하지 못하고, 그냥 만났다. 

구태여 이별하지 않고도 이별할 수 있는데, 

왜 이별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내버려두면, 잊혀지고, 절로 이별할텐데 구태여 이별의 편지를 밤마다 쓴다. 


나는 이별을 생각하면 할수록 생각만 깊어진다.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립다. 


겨울이 깊어 오자 바람이 날마다 더 차다. 


티비도 켜지 않고 내내 [자이언티]의 '마담' 이라는 노래를 듣는다. 


난 아프지 않을거야 마담

난 슬프지 않을거야 마담

그럼 그렇고 말고

난 그렇게 믿고 있네


어린 남자가 우는 것은 당연해

넌 눈물이 많아 보여

왜 슬픈 것을 슬프다 하지 못하니


난 아프지 않을거야 마담

난 슬프지 않을거야 마담

그럼 그렇고 말고

난 그렇게 믿고 있네


난 아프지....


나는 어린 남자처럼 결심을 한다. 

아프지 않을거라고, 


아픈 일은 만들지 않을거라고,

만약 아픈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나의 일상을 살 거라고,


나는 결심을 한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연락할게'


....


오늘도 이별의 편지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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