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2017, 일본
포스터 첫번째 남자는 미스미는 아쿠쇼 코지, [쉘위댄스]
두번째 남자는 변호사 시게모리는 후쿠야마 마사하루, [료마가 간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세번째 여자는 살해된 아버지의 딸 사키에는 히로세 스즈, [바닷가 다이어리]
여기에 나오는 세 사람의 주인공을 모두 다른 영화, 드라마에서 만났던 배우들이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바닷가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그리고 [공기인형]도 봤다.
참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그들은 모두들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감독도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나열하다보니, 다른 것도 아니구나 싶다.
막상 [세번째 살인]을 볼 때, 보고 나왔을 때는 감독이,
생각이 바꼈나? 왜 과하지? 뭔가 원한 이야기가 아닌데? 난 쉬고 싶어서 본 건데? 하고 갸우뚱거렸다.
지금 보니 아니다.
감독이 변한 것이 더 많은 질문이 생긴거네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질문에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정도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번째 살인]은 질문의 집대성인 듯 하다.
어제는 이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이 어색하기도 하고,
그 어색함 때문에 말을 자꾸 하게 되어 생각이 고일 틈이 없었다.
오늘 몇 번이고 떠오르는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감독은 저 익숙한 배우들에게 어떤 주문을 한 걸까?
그 주문을 배우들은 어떻게 이입한 걸까?
하는 생각이 낮부터 할 일이 남은 깊은 밤에 가시지 않는다.
(애꿎은 귤만 열개를 먹었더니, 속이 부글거린다.)
미스미 한 사람을 중심으로 세번의 살인이 일어난다.
30년전 젊은 미스미의 살인은 시게모리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 죄가 가벼워졌고(아버지는 그 일에 대해 자신이 순진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막 일어난 현재의 미스미 살인은 시게모리에 의해 진행 중이고,
마지막 살인은 사법에 의해 미스미 자신이 살해 당할 예정이다.
살인,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 의해 재단되고, 번복된다.
진실은 늘 존재하는데 말이다.
명백한 살인사건은 어떻게 재단되는가?
살인을 둘러싼 많은 사람은 살인이라는 죄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가?
그들의 말이 어떻게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마음은 범인의 진술처럼 끊임없이 번복 되는데 말이다.
진실이 가까워 진다고 느끼거나,
반대로 진실이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말하자면..., 진실이 의식 될수록
등장인물들, 특히 시게모리는 틈만 나면 단 것들을 먹었다.
케이크에, 과자에, 설탕을 두 개나 넣은 커피, 그는 단것들을 엄청 먹으며 흔들리는 진실을 붙잡는다.
영화속에 코끼리 이야기가 나온다.
검사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변호사는 코끼리의 코를 만진다.
진실은 진실이다. 하지만 진실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뿐 아니라,
...,
...,
너와 나의 만남 또한 코끼리 만지기다.
너와 나에게도 진실이 존재하겠지. 하지만 진실의 어떤 부분을 전체라고 생각하겠지.
내가 본 너가 너의 전부인 줄 알았어.
시게모리는 미스미를 일곱번 만났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만날 때마다 미시미에게 사건의 진실에 대해 합리적인 질문하고, 명확한 대답을 들으려했다.
하지만, 진실은 거대해서 질문을 하면 할수록 자신은 작아지고, 코끼리는 커진다.
코끼리는 너무 커진다.
미시미를 둘러싼 사람은 미스미라는 사람에게 엎히고, 안기고 어느새 거대한 코끼리가 된다.
온전한 진실과 멀어지지만, 온전함과 멀어질수록 결과는 명확해진다.
그래서 더 알고자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본 너를 너라고 믿고 싶기에 더 알고 싶지 않다.
그래서 미스미의 살인처럼 결과는 명확해진다.
내가 더듬어 본 너는 너의 어디일 뿐이겠지.
너이기도 하고, 너가 아니기도 하겠지.
너의 진실이기도 하고, 너의 진실이 아니기도 하겠지.
그래서 너라고 믿고 더듬으며 짜릿했던 오직 그 기억을 가지고,
너는 어디 간거니? 눈 앞에 있는 너를 두고, 너를 찾았지.
미시미의 번복처럼.
사게모리의 질문 혹은 믿음처럼.
찾을 때마다 다른 곳에서 대답하는 너를.
너 또한 그렇겠지.
'너는 어디 갔냐'며 너가 본 나를 찾고 있겠지.
우리는 각자 진실의 어느 부분을 잡고, 온전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늘 진실을 대하면서 진실이 변한 것이라고 하지.
나는 너에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너는 나에게 변했다고 말한다.
그제는 너는 나의 손을 만지고, 어제 너는 나의 가슴을 만졌다.
쉴새없이 너는 나를 만졌지만,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판사는 '소송경제'라고 말하면서 눈을 찔끔했다.
소송경제,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너와 나를 생각했어.
소송경제를 위해, 우리는 그렇게 빨리 서로를 재단하고 말았다.
그것 뿐이다.
애쓰지 말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마지막에 보여준 장면, 포스터의 그림.
살인자 미스미의 웃고 있는 얼굴과 그의 변호사 사게모리의 눈물 가득한 얼굴이 천천히 겹치는 것처럼,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진실은 종잡을 수 없다.
대체 누가 누굴...
너와 나의 진실도...
어쩌면 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한 코끼리일지도 몰라.
너가 안고 업고 있는 너의 지난 시간과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지금도 점점 거대해지는 중인지도 몰라.
그래서 열심히 너를 더듬어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은 너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코끼리일지도 몰라.
그래서 어쩌면 처음부터 너의 형체는 없었던 것일지도 몰라.
나는 너와 헤어지고,
너도 나와 헤어지고,
우리는 헤어지면서 함께 본 [세번째 살인]을 덮는다.
[세번째 살인]에 우리들의 진실도 덮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덮는다.
하얀 눈이 내려 눈케이크를 만든 그날처럼 덮는다.
착한 시게모리의 후배 변호사가 알아봐야 이해하는 거라고 순진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을 아무도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중얼거림일 뿐이었다.
[세번재 살인]은 익숙한 이들이 만든 영화인데,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내리는 눈처럼 자욱한 안개로 뒤덮힌 영화였다.
나는 너를
...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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