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홍에 관한 영화 [황금시대]를 말하면서 저절로 떠오른
'실비아 플라스' 그녀가 잊혀지지 않고 오늘 내내 머릿속을 맴맴 돌았다.
그녀의 일기책을 읽을까하다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2006년 초에 난 이 영화에 완전 빠졌던 모양이다.
나의 뇌에 저장 장치가 없는 관계로 몇 몇 단편적인 장면만 기억날 뿐 다시 봐야 했다.
실비아.
인정, 그런 태어남이 있다는 것에 인정.
테드 휴즈.
인정, 어쩔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인정.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 인정.
모두가 이해되는 영화다.
이건 영화의 배경에 깔린 시어들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의 것이 아닌 시인들의 것이었다.
시인의 말, 시인의 생각, 시인의 마음, 시를 쓰는 시인, 시를 생각하는 시인.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살았던 몇 년때문에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생각 없는 말이 내 입에서 한여름 재래식 화장실의 구더기처럼 쏟아져 나온다.
허옇게 끝도 없이 나온다.
멈춰지지 않는 말을, 내 뱉으면서 주워담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말을 하면서 말을 멈출 수 없는, 쓰레기 말.
실비아와 테드의 말,
시인의 말.
짧은 한 줄의 말.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말에 꽂혔다.
그들이 구사하는 단어에 매혹되었다.
실비아는 마지막으로 테드를 만났을 때 말했다.
"우리는 두 사람이 아니었어요. 만나기도 전부터 우리는 서로의 반쪽이었어요. 옆구리에 큰 구멍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처럼 보이다가
서로 만나자마자 한 몸이 되었어요. 그때는 흥겨워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런데 다시 우리가 우리를 반쪽으로 잘라놓았어요."
테드는 '안다'고 한다.
그러나 테드는 실비아와 함께 할 수 없다고 했고, 실비아는 자살을 했다.
테드는 실비아가 죽은 지 30년만에 실비아와 자신의 사랑에 관한 시집을 발간하고 몇 달 후 죽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분명 시적이다.
삶과 말이 모두 시적이다.
시적인 대화를 나눈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한 마디와 한 마디 사이의 여운이 긴 대화, 여운이 길어도 답답하지 않았던 대화.
너무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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