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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댓글 혹은 대답

by 발비(發飛) 2016. 4. 4.

얼마 전부터 회사일 때문에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아마 한달은 된 것 같다. 

블로그에서 한창 글을 쓸 때도 거의 독백에 가까운 글쓰기를 했었다. 

댓글을 잘 달지 못한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이 달리는 숫자는 

익숙히 보아오던 블로그나 카페의 댓글 수보다 뒷자리에 0이 하나 더 붙을 정도로 많다. 

그것이 페이스북의 핵심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묻는 말은 어떤 의도에서 묻는 지 알겠는데, 애들이 하는 말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묻는 말인지 잘 알지 못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몇 번의 잘못된 대답이 있었겠지. 

아이들은 내게 질문하지 않았고, 나는 아이들이 질문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냥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말했고, 나는 그 아이들과 상관없는 혼잣말 하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당연히 친구는 없었다. 

그들과 말을 나누는 것이 귀찮고 힘들었다. 

묻지도 않는 말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묻지 않았으니, 가만히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말을 안한다고 했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시를 쓴 시인의 페북과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소설가사람은 분명한 소설가의 블로그를 보았다. 


시인은 자신의 직장 구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전장에서도 글을 쓴 어느 철학자의 삶과 글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나른하고 편안한가 하고 다분히 자신에게 채찍을 가했다. 


내가 아는 소설가는 안 지 얼마 안되는데, 그는 언제나 내게 호의적이었으면, 친절하고 젠틀했다. 해맑게 웃으며 자신감에 넘쳐보였는데, 

오늘 처음 방문한 그의 블로그에는 꽤 깊은 우울증 일지를 쓰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두 사람에게 뭔가 말하고 싶었다. 

댓글을 쓰려다 말고,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았다. 


[대답] 

1 .부르는 말에 응하여 어떤 말을 함. 또는 그 말. 

2 .상대가 묻거나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해답이나 제 뜻을 말함. 또는 그런 말.3 .

3. 어떤 문제나 현상을 해명하거나 해결하는 방안.


[댓글]

인터넷에 오른 원문에 대하여 짤막하게 답하여 올리는 글


그들은 우리에게 묻지 않았고, 내가 말하는 것은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을 하는 것이다. 

덧글이라고 말한다면, 덧대어 쓰는 글이니, 조금의 자유가 허락하지만 말이다. 

하긴 그렇게치면 인터넷의 모든 댓글은 반칙이 되는 거니, 내 논리는 그거 사전을 핑계로 말을 못하는 것 뿐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 역시 나는 열몇살때나 지금이나 그렇구나 싶다. 


그들에게 못한 말이 하고 싶다. 


시인에게는 페이스북에는 이런 댓글을 달고 싶었다. 

"저는 당신의 시를 정말 좋아합니다. 더 없이 좋아합니다. 당신의 시가 저를 좀 깊게 하고, 좀 넓게 하고 좀 편안하게 하고 저를 조금씩 나아지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시에 감사합니다." 


소설가의 블로그에는 이런 댓글을 달고 싶었다. 

"저도 오랫동안 당신처럼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8년 가까이 푸로작과 수면제를 먹었고, 낮에는 멍했고, 밤이면 당신처럼 하루에 몇 시간쯤은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 있다. 


어떤 포스팅에는 "그 식당이 어디에요? 함께 가실래요?"

어떤 포스팅에는 "그거 어디서 샀어요?"

또 어떤 포스팅의 댓글 아래에는 "다들 그렇게 친하세요?" 

또 어떤 포스팅의 댓글 아래에는 "저도 끼워주세요."


이런 말을 ㅋㅋ, ㅠㅠ가 가득한 댓글란에 말할 수 없었다. 

익숙하다. 그냥 혼잣말을 할 뿐이다. 

그 말을 했다가는 학교 때처럼 이상한 아이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곳이 대나무숲인 듯 못다한 말을 하니 좀 시원하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내가 일을 좋아하는 것은

적어도 일을 할 때는 말을 삼킬 일도, 혼잣말을 할 일도, 주저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혼잣말로 곱씹는 것도 훈련이 되는지, 조리있게 말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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