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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Largo가 세상을 떠났다

by 발비(發飛) 2016. 7. 28.

 

 

 

 

 

Largo, 그는 꽤 오래된 인연이다. 

Largo가 세상을 떠났다. 다른 세상으로 갔다.



대학로에 있는 회사에 다니던 때, 그 동네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J작가가 그의 집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이미 친한 사이였던 반면 나는 대충 얼굴만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자리였다.  



자리를 떠야 하나, 아님 버텨서 나도 그들처럼 친한 사이가 되어야 하는 한참 갈등을 하던 즈음 나의 대각선 쪽에 나와 어정쩡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 라르고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첫눈에 서로가 아웃사이더임을 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어찌어찌 같은 담벼락에 나란히 서서 셀프인사를 나누고, 와인을 마셨다.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주로 나눈 대화는 이랬다. 



우리는 아웃사이더다, 

아웃사이더가 편하다, 

저들과 친한 사이가 되는 것보다는 저들을 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 



그는 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고, 약간의 예술성이 있는 대중음악을 프로듀싱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는 말이 아주 느린 대신 이야기를 시작하면 논리정연했다. 

그가 단어와 단어를 말하는 사이 짧은 침묵은 그의 말을 조금 철학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시간, 시간이 주는 3차적 공간은 내 몫임과 동시에 내가 그와 만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아주 느린 말투는 그의 매력이었다. 

늦은 학구열로 대학원을 다닐 때, 마침 그는 같은 학교에서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영화음악강의를 해, 그 해 가을학기는 거의 매주 그를 만났다. 그렇다고 남녀관계에서 흔히 있는 썸을 타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는 그보다 한 시간 늦게 끝나는 나를 기다렸고, 그의 차를 타고 때마다 다른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했다.  

남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타박이나 받던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심할 정도로 진지하게, 모든 것을 음악의 프레임을 걸어서 이야기를 이어주었다. 생각나는대로 이야기를 해도 그가 진지하게 특별하게 이어줘서 내 이야기가 부끄럽지 않았다. 



그가 아주 느리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사이사이, 그의 차에 심하게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볼 때 나는 꽤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는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하나의 이야기로 뻗치고, 그의 차에 흩어진 물건들은 내 이야기의 여러요소로 장식이 되었다. 

그래서 내 이야기 여기저기에 그의 말과 그의 물건이 꽤 많이 있다. 



이 블로그 곳곳에도 그의 흔적이 있다.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우작]과 같은 몇몇 영화는 그의 추천을 받은 것이다.  그는 그의 생김과 비슷하게 쓸쓸하고도 인간적인 영화들을 좋아했고, 그런 영화는 대부분 멋진 음악이 깔렸다. 

나의 평범한 말이 그의 음악적 프레임을 거쳐 내게 다시 올 때, 지금 생각해보면 뮤즈라는 것이 이런 것일거다.

그 한 학기가 지나고 일부러 만나지는 않으니, 자연스럽게 만남은 뜸했다. 
공황장애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가, 다시 운전을 해야만 했을 때운전하는 이튿날 우연한 통화에서 그 말을 했더니, 다음날 회사 앞으로 왔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자고 했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자신의 건망증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이야기했다. 어느 정도임을 설명하면서, 수업 중 앞에 앉은 여학생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자신도 모르게 수업 뒤에 잠깐 남으라고 했는데 그 여학생이 정작 수업이 끝나고 왔을때 그걸 잊어버렸다는 것, 그런 자신을 보면서 부끄럽지만 페넬로페 크루즈가 나오는 영화 [엘레지]를 상상하고 공감했다는 솔직한 고백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그는 내게 앞서라고 하고, 그는 내 차 뒤에서 따라오며 블루투스로 속도와 핸들링에 대해 체크해주었다. 그렇게 후방 에스코트를 받으며 집까지 왔고, 그는 괜찮을 거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운전을 하면서 블루투스로 오래 통화하는 것의 시작이었다.  



명절이나 주말에 고향으로 가는 오랜 시간, 매번은 아니지만 간혹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블루투스로 통화를 했다. 

이상한 관계다. 남녀가 아니면서 오래 이야기를 해도 멈추지 않았다. 

블루투스의 음질에 대해, 노이즈에 대해, 소리 끊김에 대해 그는 음악프로듀서로서 이야기를 했다. 느린 그의 말 사이사이에 나는 온갖 상상이 발동된다. 때로는 스팩타클하고, 때로는 무드있게, 때로는 에로틱하게 그것이 재미있었다.



몇 년전 뜻하지 않은 퇴사로 컨디션이 최악이던 때, 그는 교수 재임용을 위한 논문 마무리가 잘 안된다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실습교수인데 텍스트작업을 해야하는 논문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이해는 했지만, 그때 나의 상황은 최악이었기에 온 몸으로 달갑지 않는 티를 내며 근근이, 최소한의 에너지로 그의 논문을 도왔다. 



논문정리가 끝나고 그는 엄청 고맙고 미안한 얼굴을 하고 밥을 사주었다. 그러면서 선물을 하고 싶은데, 뭘 사줘야 할 지 모른다고, 가지고 싶은 것이 없냐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했다. 그즈음의 기분은 늘 그랬었다. 그의 차에서 내리면서,



"마음 무거우시라고 선물 안 받을 거에요." 



이 말이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이다. 그 말이 내게 돌아왔다. 



올해 봄 J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논문을 좀 도운 걸로 유세를 떤 것이 몇 년내내 마음 한 구석에 미안했기에 함께 가자고 문자를 보냈는데 해외 어디에 있다며, 대신 언제 바쁘지 않을 때 와인 한 잔 하자고 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바빴다. 



그리고 일주일 전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본인부고! 본인부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무슨 일이냐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답문자를 보냈고, 지난 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답이 왔다. 

그의 

블로그에 갔다. 

미소진 그의 얼굴 아래, 그의 별명 Largo가 있고,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그의 프로필 메시지가 여전히 있었다.  



'곧...금세 잊혀질 것입니다. 건강하세요. '  



짧은 장례기간 중에는 갈 용기가 없었다. 그는 싱글이었고, 스무살 많은 연로한 누나가 계셨고, 그 외의 가족은 없다고 했었다. 

발인에 갔다. 

그의 장례식장 복도에는 수많은 화환들이 쭉 늘어있었지만, 발인에 참석한 사람은 교회에서 나온 몇 분, 친구로 보이는 두세명이 모두였다. 나는 낯선 이가 나눠주는 백설기를 들고 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그를 화장하는 곳, 그의 유골을 보관하는 곳까지 따라갔다.
그가 불구덩이로 들어간 몇 시간 동안 마주한 초록산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전날 영동고속도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어린 여자들의 영정이 차례로 지나갔다. 

누군가의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르고의 잿가루는 봉투에 담긴 채, 아직 식지 않아 그 봉투를 만진 사람이 뜨거워서 후후 불며, 유골을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안내가 붙은 커다란 항아리로 들어갔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의 친구인 듯한 이가 내게 누구냐고 했다.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마음이 아팠다. 마침 어떤 작가에게 용건있는 문자가 왔다. 짧은 답 끝에 누가 돌아가셨는데, 며칠 전 작가와 헤어질 때 한 어설픈 허그를 그에게 했더라면, 마음 무거우라는 마지막 말을 안 했더라면 마음이 덜 아팠을 것이라고 했다. 작가는 지금이라도 마음으로 안아주라고 했다. 나는 돌아오는 길 마음으로 오십번 넘게 안아주었다. 마음이 좀 나아졌다. 





점점 횟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지금도 그가 생각날 때마다 마음으로 안아주었다. 



그가 언젠가 들어보라고 했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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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snake - Here I Go Again

 

I don't know where I'm going

나는 내가 어디에 가고있는지 오르겠어

But, I sure know where I've been

그러나,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히 알고있어

Hanging on the promises in songs of yesterday

어제의 노래들에 있던 약속을 붙잡으며

An' I've made up my mind,

그리고 난 다짐했지

I ain't wasting no more time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야

But, here I go again, Here I go again

그러나, 다시 나아가 볼게요



Tho' I keep searching for an answer,

계속 해답을 찾으려하지만

I never seem to find what I'm looking for

내가 찾고있는 것을 절대 찾지못할 것 같아

Oh Lord, I pray

신이시여, 기도합니다

You give me strength to carry on,

계속해 나갈 힘을 주세요

'Cos I know what it means

To walk along the lonely street of dreams

왜냐하면 꿈을 향한 외로운 길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Repeat]

An' here I go again on my own

스스로 다시 나아가 볼게요

Goin' down the only road I've ever known,

알고 있는 유일한 길을 따라 내려가

Like a hobo I was born to walk alone

방랑자 처럼, 걷기위해 태어난 것 처럼

An' I've made up my mind

그리고 다짐했지

I ain't wasting no more time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야



I'm just another heart in need of rescue,

Waiting on love's sweet charity

나는 단지 사랑의 달콤한 자선을 기다리며 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지

An' I'm gonna hold on

For the rest of my days,

그리고 나는 내 여생동안 기다릴거야

'Cos I know what it means

To walk along the lonely street of dreams

왜냐하면 꿈을 향한 외로운 길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Repeat]



But, here I go again,

그러나, 다시 나아가 볼게요

Here I go again,

다시 나아가 볼게요

Here I go again,

다시 나아가 볼게요

Here I go...

다시...



An' I've made up my mind

그리고 다짐했지

I ain't wasting no more time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거야



[Repeat]X2



But, here I go again,

그러나, 다시 나아가 볼게요

Here I go again,

다시 나아가 볼게요

Here I go again,

다시 나아가 볼게요

Here I go...

나아가 볼게요



출처: https://rockthenation.tistory.com/entry/Whitesnake-Here-I-Go-Again [Rock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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