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을 갔을 때였다.
밤마다 코피가 났다. 고산증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의 안나푸로나와 인도의 레를 갔을 때는 온몸이 마치 풍선처럼 부어올랐고,
남미의 안데스를 갔을 때는 복통과 함께 토사곽란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티벳에서는 코피였다.
고산증이 내게는 다양한 모양으로 오는구나 했다.
물론 처음이었던 안나푸로나에서는 많이 놀랐고, 혹 죽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괜찮았고, 밤마다 코피가 난 티벳에서는 차라리 이정도로 고산증을 때운다면 괜찮다 싶었다.
차라리 이정도면 괜찮은 고산증의 병증이다,
우리는 마주 앉아서 코피를 흘렸다.
몸의 어느 부위가 찢어져서 흐르는 피가 아닌, 절대적인 피로나 체내 압력 때문에 몸 밖으로 흐르는 코피,
우리는 서로의 눈을 쏘아보면서 의미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마치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코피처럼,
병이랄 것도 없는 병으로, 병원에 갈 필요도 없는 코피를 흘린 것이다.
보기 흉하고, 찌질하고, 쉽게 멈추질 않았다.
만나던 이와의 이별이 예감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누군가와는 조용히 사라져가는 떨림
누군가와는 더뎌지는 수신버튼
누군가와는 느려지는 맥박수
그렇게 서서히 관계는 잦아들어간다.
관계가 잦아들면서 안심이 되기도 하는데, 애매한 관계이기 보다는 친구라고 우기면 친구는 될 수 있을 때이다.
나의 최악은 영원히 볼 수 없음이니, 최악은 아닌 것이다.
잠시 쉬어야 했지만 쉬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각자의 코피때문에 실랑이를 하고, 마주 코피를 흘리고 있는 서로 때문에 소리쳤다.
두어시간쯤 지난 뒤, 둘의 코피는 멈추었을 때쯤 가뿐 숨을 겨우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등을 돌린채 깊은 잠에 들었다.
그와의 만남이 멍하고 쒜해서 티벳같고, 마땅히 가야할 갈 곳이 없어서 티벳같다. 티벳같았다.
아무리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해도 내 영혼이 아닌 모든 것은 내게 배경과 장식에 불과하다
-페르란도 페소아 [불안의 책] 텍스트 165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골이 (0) | 2015.11.30 |
---|---|
비둘기 (0) | 2015.11.25 |
아직 (0) | 2015.11.23 |
여행-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 (0) | 2015.11.12 |
[Andy Weir] The Egg (0) | 2015.10.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