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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티벳에서 흘린 코피

by 발비(發飛) 2015. 11. 23.


티벳을 갔을 때였다. 

밤마다 코피가 났다. 고산증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팔의 안나푸로나와 인도의 레를 갔을 때는 온몸이 마치 풍선처럼 부어올랐고, 

남미의 안데스를 갔을 때는 복통과 함께 토사곽란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티벳에서는 코피였다.


고산증이 내게는 다양한 모양으로 오는구나 했다. 

물론 처음이었던 안나푸로나에서는 많이 놀랐고, 혹 죽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괜찮았고, 밤마다 코피가 난 티벳에서는 차라리 이정도로 고산증을 때운다면 괜찮다 싶었다. 


차라리 이정도면 괜찮은 고산증의 병증이다, 


우리는 마주 앉아서 코피를 흘렸다. 

몸의 어느 부위가 찢어져서 흐르는 피가 아닌, 절대적인 피로나 체내 압력 때문에 몸 밖으로 흐르는 코피, 

우리는 서로의 눈을 쏘아보면서 의미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마치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코피처럼, 

병이랄 것도 없는 병으로, 병원에 갈 필요도 없는 코피를 흘린 것이다. 

보기 흉하고, 찌질하고, 쉽게 멈추질 않았다. 


만나던 이와의 이별이 예감될 때 나타나는 증상이 있다. 


누군가와는 조용히 사라져가는 떨림

누군가와는 더뎌지는 수신버튼

누군가와는 느려지는 맥박수


그렇게 서서히 관계는 잦아들어간다. 

관계가 잦아들면서 안심이 되기도 하는데, 애매한 관계이기 보다는 친구라고 우기면 친구는 될 수 있을 때이다. 

나의 최악은 영원히 볼 수 없음이니, 최악은 아닌 것이다. 


잠시 쉬어야 했지만 쉬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그렇게 각자의 코피때문에 실랑이를 하고, 마주 코피를 흘리고 있는 서로 때문에 소리쳤다. 

두어시간쯤 지난 뒤, 둘의 코피는 멈추었을 때쯤 가뿐 숨을 겨우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등을 돌린채 깊은 잠에 들었다. 


그와의 만남이 멍하고 쒜해서 티벳같고, 마땅히 가야할 갈 곳이 없어서 티벳같다. 티벳같았다. 


아무리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해도 내 영혼이 아닌 모든 것은 내게 배경과 장식에 불과하다

-페르란도 페소아 [불안의 책] 텍스트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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