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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비둘기

by 발비(發飛) 2015. 11. 25.

아침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쾌속으로 날아든다. 깜짝 놀라며 뒷걸음을 쳤다.

중 2쯤 되는 남학생 한 명이 비둘기를 발로 개쫓듯 쭟고 있었다. 

어릴 적 내가 개를 쫓듯...아니 만만한 강아지를 발로 후리며 쫓듯이 비둘기를 쫓았다. 


응답하라 1988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는 88올림픽 때 비둘기.

그때만 해도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며,다른 모든 새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여신의 이미지가 분명 있었다. 


시간이 가고 

세상은 비둘기를 길냥이에 못지 않게 천대한다. 

길냥이는 골목길마다 있는 작은 카페 주인들이 거두어주기라도 한다. 

비둘기는 거리의 쓰레기통을 배회하는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 

아무데서나 똥을 싸대기만 하는, 세균덩어리가 되었다. 


1988년 보다 더 오래전, 구약의 시대에 노아의 방주가 있었다. 

세상은 타락했고, 신은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신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홍수로 덮어버렸다. 

비둘기는 노아와 그의 방주 속에 한쌍씩 남겨둔 동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뿐 아니라, 비가 그쳤을 때 가장 먼저 세상으로 내보내졌고,

비둘기는 올리브잎을 물고 돌아와 세상이 안전하다는 기쁜 소식을 방주의 노아에게 전했다. 

올리브잎을 문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인 것은 이렇게 성경에 있다. 


꾸꾸루 꾸꾸꾹... 맞나?

이런 노래가 있었다. 엄청 즐거운 희망찬 노래였던 것으로 


비둘기가 우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가 올해 여행 중에 비둘기가 저런 소리를 내면서 우는 것을 처음 들었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비둘기의 울음 소리였다. 

신기한데, 분명 새의 울음 소리 같지는 않았다. 

비둘기는 꿩과 세상에서 사라진 도도새와도 사촌이랬다. 

그러고보니 꿩이나 도도새의 소리가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중2쯤 되는 남학생이 비둘기를 쫓았고, 

그 중학생은 88올림픽을 겪지 않았을테니 평화의 상징이라는 비둘기에 관한 기억이 당연히 없다. 

그냥 고양이를 쫓듯, 개를 쫓듯, 비둘기를 쫓은 것 뿐이다. 

나처럼 비둘기를 너무나 싫어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비둘기는 싫어하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비둘기가 내 쪽으로 날아든 이유일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히 비약이겠지만, 돌아오는 것이 비둘기니까... 저를 기억하는 쪽으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변하고, 돈다. 

나 또한 변하고 빙빙 돌 것이다. 

변하기 전을 기억하는 사람과 변하기 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나 또한 자신이 변했음을 생각하는 나, 생각하지 못하는 내가 때로 교차함으로 다른 사람과 분류를 달리할 필요가 없다. 

나를 포함한 타인도 분명 비둘기와 같은 성쇠를 겪는다. 


마음의 성쇠, 

나의 마음은 1988년의 비둘기가 아니라 2015년 길에서 쫓기는 비둘기가 되었다.

비둘기처럼..., 개 쫓기듯 내 마음이 쫓기고 있다. 

쫓기는 모든 것은 더없이 누추하다. 





...... 갑자기 든 생각,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서 다행이다. 

혹은, 

사람이 물 속에서 살 수 없어서 다행이다. 

물고기도 비둘기가 될 뻔 한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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