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다!
이건 한 달하고도 일주일 전, 발등뼈가 부러진 뒤 얼마쯤 지난 뒤였다.
당신이 만약 무릎의 멍이 다칠 때의 상처라고 생각하며 측은해 여긴다면 틀린 것이다.
이건 발을 깁스를 한 뒤 한 다리로 생활하면서 생긴 멍과 상처들이다.
어쩌면 더 측은하다 생각할지도...,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니 말이지.
이렇게 말하기도 무참하지만, 기어다니고, 기대어 다니면 누구나 이렇게 된다.
괜찮다! 난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 인간이며, 게다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인간이다,
바퀴의자,
바로 저 바퀴의자를 시디즈에서 주문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일주일이나 걸렸다.
괜찮다! 우리 집으로 배송된 뒤 나는 다시 행복했졌으니..
이게 행복이구나.. 진심 그랬다.
더 이상 기어다니지 않아도 되고, 목발을 짚느라 어정쩡하게 일어섰다 앉았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목발이 넘어지는 소리에 더는 놀라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바퀴의자를 타고 다니며,
현재의 삶을 감사하며 예전보다 더 청소도 열심히 하고, 밥과 반찬도 했다.
정말 유사이래로 가장 지속적으로 잘 챙겨먹었다.
바퀴가 너무 고마운 나머지 '바퀴'에 대해서 지식백과를 찾아보기도 했다.
백과사전에서는 '바퀴' 인류가 발명한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했다.
바퀴는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에서 발굴된 전차용 바퀴로 BC 3500년경의 것이 최초라고,
그 1000년 후 이륜과 사륜바퀴가 영구차용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내게는 바퀴가 뭐였을까?
'바퀴'하면..., 떠오른 것,
착하고 품위있는 작가 헤르만 헤세가 쓴 [수레바퀴 아래서]
""아주 지쳐 버리지 않도록 해라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게 될테니까"
그리고 고3때 담임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엽서의 시,
교과서 밖의 시로 처음 만났던 황동규시인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길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 날도 안 보이고
보이고, 서로 다른 새떼 지저귀던 앞뒤 숲이
보이고 안 보인다. 숨찬 공화국이 안 보이고
보인다. 굴리고 싶어진다. 노점에 쌓여있는 귤,
옹기점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 둥그렇게 누워 있는 사람들,
모든 것이 떨어지기 전 한번 날으는 길 위로.
바퀴의자를 타고 온 집을 밤이나 낮이나 휘젓고 다녔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와 쌓인 쓰레기를 버려주는 고마운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이게 한 발로 사는 사람이 한 일이 맞나고...'
난 너무 잘하고 있었던 거지. 바퀴의자가 가지 못하는 현관 밖 세상은 말고.
나는 바퀴를 타고 온 집을 움직였다.
지금?
바퀴의자를 타고 다니면서 무릎의 멍과 상처는 가셨고,
시간도 지나 가셨다.
아직 깁스를 푼 것은 아니지만, 목발을 짚지 않아도 조금은 걸을 수 있고,
바퀴의자를 타지 않고서 집안을 어느 정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데, 언제나 내 침대 옆까지 따라왔던 바퀴의자가... 거실에 덩그러니 있는 것이다.
바로 사진처럼 말이다.
어디 딱 맞는 자리가 없는채 거실에 어정쩡하게 덩그러니 말이다.
그 생김이 어찌나 낯설고 어색한 지,
몸과 딱 붙어있어서 마주 하지도 못해 그런지 모를 일이다.
식탁에 앉아 한참 바퀴의자를 쳐다보았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같기도 하고, 어느새 늙어버린 이모 같기도 하다.
결국 그런 것인가?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그리고 황동규... 욕망... 그냥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이 없어진... 바퀴의자.
아직도 난 깁스 중이다.
심지어, 지난 주에는 풀어보자던 의사선생님은 2주만 더 하자고 한다.
그동안은 조금은 풀었다 묶었다 해도 된다기에 잠시 풀었더니 엄청 팅팅 부었다. 네이버에 물어보았더니,
깁스 풀면 원래 그런 거란다.
원래.. 원래라는 것이 너무 많은데,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나도 원래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바퀴, 나는 바퀴가 좋다.
조금의 힘으로 굴러가는 바퀴가 좋다. 나는 바퀴가 좋아서 바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쓸모가 참 좋다. 나를 실어서 다닐 때도 좋고, 화분을 실었을 때도 좋고, 밀고 갈 때도 좋고, 타고 갈 때도 좋다.
무엇보다 발을 한 번 굴리면 쓰윽하고 밀려가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이 세상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다른 중력이 지배하는 공간.
좋다니까...지금도.... 나는....여전히 바퀴가 좋지만, 지금.... 나는.... 한 번 걷고 싶다.
한 발 한 발 얄짤없이 또박또박, 오른 발 왼발 얄짤없이 또박또박 제대로 걷고 싶다.
에어큐션이 든 운동화를 신고 뛰고 싶기도 하고, 릿지등산화를 신고 바위산을 직각으로오르고 싶기도 하고, 5센티짜리 구두를 신고 광화문 사거리를 또각또각 오가고 싶기도 하다. 지금도.... 나는....여전히 바퀴가 좋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걷고 싶다.
바퀴의자보다... ....이 더 좋다!
바퀴의자에게 미안해서 말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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