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쎄하다.
꼭 이래야 하는 것은 아닌데, 한 번 이래본다.
서태지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돌려들으며
알 수 없는 애잔함이 방 가득 깔린다.
윤상을 좀 좋아해 봐야지 하고,
그의 앨범을 하나쯤은 모두 들어보려 하였으나, 인내심 부족이다.
차라리 kbs 누들로드 ost는 이랬나 하면서 잘 듣겠는데 말이지.
공일오비, 윤종신, 유희열, 윤상.. 모두 좋아하지만, 그들의 가사가 있는 음악은 앨범 하나를 다 들은 적이 없다.
내게 그러하다.
모두들 그들의 소소한 발라드를 좋다하고, 나도 거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나는 그런 여자가 좋다. 아주 소소한...딱 윤종신 가사같은 삶이 좋은데 말이지.
그런 소소함..., 새벽 다섯시 날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듣는 그들의 노래에 온 마음이 촉촉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그걸 못한다.
머리가 쎄하다.
윤상을 이야기하다가 누들로드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누들로드가 보고 싶어져,
가지고 있던 영상 파일을 열어 누들로드를 다시 본다.
중국사람들이 면을 만드는 모습은 역시 신기하다.
밀가루를 빚고, 늘이고, 자르고, 뭘해도 국수가 된다.
타클라마칸사막도 나온다.
신장위구르,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그 이상하게 생긴 종족의 얼굴을 보고 싶다.
이 세상의 모든 누들은 신장에서 출발해서,
서로는 중동을 지나 이탈리아의 밀과 만나 파스타로 꽃피웠고,
남으로는 베트남, 태국으로 내려가 쌀국수로 꽃피웠고,
동으로는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가 소바와 라면으로 꽃피웠다 했다.
중국이 중심에 있었다.
난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자꾸 보니까 역사적 체험을 하고 싶은 취지에서 국수가 먹고 싶어졌다.
칼국수 말고, 제주도의 고기국수. 그 국수가 꼭 중국의 우탕면 같고, 일본이 라면 같은데...,말이지.
이렇게 한 편 두 편 보다보면 , 날이 샐 것이다.
하얗게 날이 새는 거지.
깁스를 풀었다. 마음대로 걸을 수는 없어도 이제는 걸어야 하는 단계라고 한다.
조금 절뚝거리기는 하지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신을 신는 것이 문제다. 부은 발 때문에 구두는 당연히 안 들어가고, 단화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직 낡은 운동화만 발이 들어간다.
버리려고 했던 운동화인데 말이지.
이제는 나가야 하는데 말이지.
요즘 떠오르는 시가 내게는 좀 웃기다.
한박자 늦거나 빠르거나. 타이밍이 영.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가 오늘 내 주절거림에 어울릴 법한데,
그건 아겐가 그젠가 올렸고, 그 때는 사실 <가지 않는 길>이 맥락에 맞았았는데,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로 우긴거고...
오늘은 마음 상태는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인데, 내가 떠올릴 수 있는 프로스트의 마지막 시인 <담장을 고치며>를 찾아 올린다.
근데 마음을 다해 보면, 그 맥락이 닿는다. 좋다.
그렇다면, 프로스트의 시의 정서가 거기서 거기인지, 아님 무엇으로도 확대 해석이 가능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인지, 신기하다.
후자겠지!
담장을 고치며
로버트 프로스트
담장을 사랑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어
그 아래 언 땅을 부풀려
위의 돌들을 햇빛에 쏟아뜨리고는
두 사람이 지나갈만한 틈을 만든다.
사냥꾼들이 저지르는 일도 있다.
나는 그들이 지나간 다음 와서
그들이 헝클어 놓은 곳들을 고쳐 놓는다.
그러나 그들은 짖어대는 개들을 즐겁게 하려고
토끼를 숨은 곳에서 쫓아 내고자 했던 것이다.
내가 말한 틈이란,
생겨나는 걸 아무도 보거나 듣지 못했겠지만,
봄철 고칠 때 쯤에야 보게 되는 것,
나는 언덕 너머 이웃에게 알려 주어,
어느날 같이 만나
또 다시 우리 사이에 담을 쌓는다.
우리가 떠날 땐 우리 사이에 담을 끼고 간다.
각자에게 떨어진 돌은 각자의 것.
어떤 것은 빵덩어리, 어떤 것은 거의 공의 모습,
균형잡으려면 주문이 필요할지경이다,
"등을 돌릴 대 까진 제자리에 있어라!"
그것들을 다루다 보면 손가락이 거칠어진다.
오, 그저 하나의 야외경기,
한편에 한 사람씩. 그 이상은 아니다,
그곳에 우리가 담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니까,
그는 온통 솔밭이고 나는 사과과수원.
내 사과나무가 건너가
솔방울을 먹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고, 내가 그에게 말하면,
그는 단지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들지요."라고만 말한다.
봄은 내 안의 장난꾸러기, 그의 머리 속에
한가지 생각을 집어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어째 그게 좋은 이웃을 만드나요? 그건
소가 있는 데나 그런 것 아닌가요? 여기엔 소가 없잖아요.
담을 세우기 전 나는
담을 무엇 때문에 세우는가
그리고 누구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걸까를 알고 싶어요.
담장을 사랑하지 않는 그 무언가가,
그것을 허물어뜨리고 싶어하는 그 무언가가 있지요.
'요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정확히 말해 그것은 요정은 아니니, 그가 스스로
말했으면 했다. 그는 마치 무장한 구석기 야만인처럼,
양손에 돌 위를 꽉 쥐고 오고 있다.
그는 내가 보기에 숲과 나무들의 그림자의
어둠 만이 아닌 어둠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어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말을 기꺼이 잘 생각하는 그는
다시 말한다.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들지요."
밤이 되면 자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는 네팔의 한 여인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데,
같은 길을 가는 것을 거스르고 있는 자,
지난 금요일에 드라마가 시작된 [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모두들 같은 방향으로 출근하는 길 홀로, 거슬러 걷는 장그래. 처럼
장그래는 같은 방향으로 가기로 하였는데, 나는 아직, 좀, 더, 거슬렀으면 싶은 걸까?
프로스트는,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들지요, 그런다.
하루의 시간 배분은 담이며, 울타리이다.
시간을 허물어, 담을 허문다.
옆집도 보이고, 앞집도 보이고 거리도 보이겠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늘이 아직 검은데, 푸르스름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미묘한 차이를 설명할 길은 없지만 알 수 있다.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검은 색,
나도 어제와 같지만, 아주 미세하게 다른 나.
낮에 들은 팟캐스트의 김연수 작가의 말 또한 떠오른다.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는 관계의 힘"
해가 뜨면 이 주제로 썼다는 그의 단편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택배로 오겠지.
소설가 김연수를 엄청 좋아했으면 좋겠다. 윤상에게 그런 마음인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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