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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by 발비(發飛) 2013. 8. 22.

 

 

 

 

포켓수첩


 

"사랑에 빠지면 무엇보다 먼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에게 가서

고백하기 전에 반드시 혼자가 되어

자기 감정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것을 혼자 음미하는 것 보다 더

북유럽 사람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_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중에서

 

내가 떠올린 말이나 글이,

내가 하고 있는 말이나 글과 모두 무관함을 일단 말한다.

논리도 근거도 없이 그냥 오직 나라는 사람의 세포구조에서만 연결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의 원고에 인용된 글이 이렇게 무관함으로 연결되어있다면,

오늘 오전의 회의에서처럼,

 

보편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논리적 근거가 없으므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공감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이 건은 안된다. 라고 목놓아 외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앞도 뒤도 없이.... 떠올린다.

 

"사랑에 빠지면 무엇보다 먼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에게 가서 고백하기 전에 반드시 혼자가 되어

자기 감정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것을 혼자 음미하는 것 보다 더 북유럽 사람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지난 주는 내내 휴가였다.

 

외부적으로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그렇지만 사실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18세기, 19세기에 일어났던 산업혁명같은 일이 있었다.

산업혁명, 혁명이 두 세기에 걸쳐서 일어나다니, 어느 날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그렇다.

어느 날, 어느 시가 아니라 열흘에 걸쳐 혁명이 일어났고, 내 몸은 그 때의 런던과 같이 검고 질퍽거렸다.

 

산업혁명의 시기에 영국 런던시의 모습은 그 전과는 완전 다른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강남처럼, 혹은 구로처럼 그 전에는 있지 않았던 성격의 구역이 생겼다고 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진열하고 파는 상점과 물건을 만드는 굴뚝이 생긴거지. 혁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그렇다.

무엇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가 되어 몸이 스스로를 해체시키고 합체시켰다.

어쩌면 아직 19세기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도 드는군.

 

사랑에 빠지면 무엇보다 먼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에게 가서 고백하기 전에

반드시 혼자가 되어 자기 감정을 곰곰이 생각하고 그것을 혼자 음미하는 것...

 

나는 곰곰히 생각하고 싶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일어났는지, 그것은 왜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지,

궁금해하는 중이다. 그러나 아직 곰곰히 생각하게 되지 않는다.

빠르게 돌아가는 풍차 날개에 올라탄 것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중인가... 싶기도 하다.

 

어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세계인이 인정한 장건강을 위한 프로바이오틱스, 한 포에 4억5천마리의 프로바이오틱스가 들어있단다.

어제부터 나는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 또한 지난 열흘의 휴가와는 무관한 일이다.

다만, 4억 5천마리의 균을 몸으로 넣는 일을 매일 한 달간 일단은 해 볼 생각이다.

이 균들 중에 나의 장까지 도달하는 놈이, 몇 마리나 살아있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한 뼘 정도의 길이가 그들에게는 구비구비 먼 길인 모양이다.

한 달을 먹고, 또 한 달을 먹어서

수백억마리의 균들이 몸 안에서 잘 버틴다면, 나는 배가 아프다고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반창고만 붙여도, 브래지어를 좀만 오래해도 간지러운 피부 알러지 또한 고쳐지길 바란다.

<청결의 역습>의 유진규피디는 가능하다했다.

 

열흘 휴가의 일도,  매일 먹어야 하는 4억5천마리의 프로바이오틱스도, 그것들을 생각하는 것도, 모든 것은 혼자만의 일이다.

혼자 음미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다. 세상이 변할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 또한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숭이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또 무관한 인용

소크라테스는 대중의 뜻과 어긋나(너무 간단한 단정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사형집행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회를 왔던 크리톤은 너무나 곤히 자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깨우지 않고, 빤히 들여다본다.

이 시점에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평범하게 받아들여 달게 잠까지 자는 소크라테스에게 놀란다.

그리고 깨어난 소크라테스에게 탈출을 권고하고, 이것을 시작으로 대화를 나눈다.

다음날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대중과 정의.....에 관한 이야기 끝 부분이다.

 

소크라테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건강으로 해서 더욱 좋아지고, 병적인 것으로 해서 해를 입고 파멸된다면, 우리는 그것이 파멸되고서도, 그래도 과연 사는 보람이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그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육체를 가리키는데, 그렇지 않은가?

크리톤: 그렇지.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우리는 파괴되고 못쓰게 된 육체를 가지고 있어도, 과연 사는 보람이 있을까?

크리톤: 결코 있을리 없지.

소크라테스: 그러나 그렇다면, 부정으로 해롭게 되고, 정의로 이롭게 되는 그것이 파괴되고 말았다면, 그래도 과연 사는 보람이 있을까?아니면,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인가는 접어놓고라도, 어쨌든 부정이나 부정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그것이 육체와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우린 생각하는가?

크리톤: 결코 그렇진 않지.

소크라테스: 오히려 육체보다도 더 귀중한 것이 아닌가?

크리톤: 훨씬 귀중하지.

 

-올재클래식 6 <소크라테스의 변명 외> 제2권 크리톤편 88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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