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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J.J.루소] 참회록

by 발비(發飛) 2013. 7. 16.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은 일찍이 전례가 없는 일이며, 앞으로 흉내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 하나를 발가벗겨 세상 사람들에게 전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바로 나 자신이다.

(......)

 언젠가 최후의 심판의 나팔 소리가 울려 나오더라도,

나는 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심판관인 신 앞에 다가가서 큰 소리로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행하였노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노라.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말하고 싶다. 어떠한 잘못도 감추지 않고 어떠한 선생도 과장하고 싶지 않다."

 

-----루소의 [참회록] 중에서.... 박범신 에세이 [산다는 것은]에서 발췌

 

 

나와 띠동갑에다 한 살 더 보태야 하는 후배가 있다.

그런데도 그는 언제나 지가 선배라고 주장한다.

그와 나는 동문수학을 한 선후배사이로 그가 선배이다.

우리는 세대차이에 가까운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언제나 한 곳을 향한 열정으로 기쁨으로 동등했다.

 

그런 그와 1년 반만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용건이 있는 만남이었다.

그의 회사에서 받은 미션에 관해 내게 서치할 것이 있다며 밥을 사겠다 하였다.

저녁을 먹으면 그의 미션을 대충 마쳤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집.

 

그는 2년 전인가, 3년전에 신춘소설로 등단한 후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그 사이에 결혼이다, 뭐다 좀 어수선하기는 하였다지만

그가 글을 쓰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였다.

그를 언제나 동등하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글에 대한 그의 쉼없는 열정과 근성에 존경지경으로 바라봤었으니까.

언제나 "너 진짜 대단해!" 그랬었다.

 

아무튼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누군가의 언급은 곧잘 비수가 되므로 일단 노코멘트하였다.

그런데

그는 문화센터 소설창작반을 등록했다고 했다.

헐;;; 했다.

이유는 회사에서 나오는 자기계발비를 소진해야 했단다.

겉으로는 또 노코멘트, 속으로는 미친... 그렇더라도 언제까지 배울거야 그랬다.

 

"아.. 그래? 좋으면 됐네."

 

우리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최민석의 소설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최민석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스토리텔러... 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소설창작반에서 일주일마다 3쪽씩 소설숙제가 있다고 했다.

 

또 속으로 미친...그랬다.

너는 너가 없냐?

너를 이야기하는데 왜 자꾸 배우는데?

 

속으로 그랬다.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가르치려 한다. 미치겠다. 참아야한다.

습관이다.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만 이 못된 버릇을 고친다.

그래서 속으로만 했다. 배우지마!

난 배우지 않을래.

내 말은 태어난 채 그대로의 말을 쓸래.

그게 입으로 나오는 말이든, 손가락을 통해 자판으로 두드려지는 말이든 태어날 때 가진 말투로 말할래.

 

그가 일주일에 3쪽 소설 숙제를 하면서 그래도 쓰니 낫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이야기했다.

"나도 일주일째 블로그에다 마구 두드리고 있어. 그래서 나도 좀 나아."

그가 "다행이다." 그랬다.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야... 뭐가 다행이야? 대체 뭐라고. 그냥 부지런한 느낌이라서 낫다고, 그 말한 거잖아."

"그게 다행이라고! 참 나.. 까칠해가지고."

 

그때 문득, 생각났지.

언젠가 박범신 작가의 수필집 [산다는 것은]에 인용되었던 루소의 [참회록]

집에오자 책들 사이에 뒤져 찾았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닌데, 후루룩 읽다가 강렬하게 꽂혔던 [참회록]

 

난 이 곳에 뭐 대단한 무엇인가를 긁적이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행하였노라, 생각하였노라, 살았노라, 선악을 가리지 않고 말하고 싶다. 잘못도 감추지 않고 과장하고 싶지 않다. 는 루소의 뜻을

여기에는 부합하고자 한다. 난 후안무치하고자 한다.

 

후안무치 厚顔無恥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름

 

언젠가 최후의 심판의 나팔 소리가 울려 나오더라도,

나는 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심판관인 신 앞에 다가가서 큰 소리로 말을 하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행하였노라.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노라.

나는 이렇게 살았노라.

선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말하고 싶다. 어떠한 잘못도 감추지 않고 어떠한 선생도 과장하고 싶지 않다."

 

그와 나는 아이스크림집이 문을 닫는다는 시간에

서로에게 괜히 미안해하며 어깨를 토닥토닥 응원해 주며 헤어졌다.

작은 일로 둘 다 편하게 팍팍 성질을 냈기 때문이다.

.

.

난 아마 언젠가 열정적이었던 나의 시간동안 구덩이를 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구덩이를 의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 무심코 걸어가는 길에 그 구덩이가 함정이 되어,

내가 그 안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간혹 불안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어느 시간 열정으로 팠던 구덩이에 빠진다면?

그곳에는 아직 열정이 남아있을까? 더는 열정에너지가 흐르지 않느 그 구덩이에는 어떤 냄새가 날까? 흙들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어떤 시간의 무한한 열정, 그것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 간혹 영혼을 불안하게 한다.

 

이러한 느낌은 일주일째 무성하게 번식 중이다.

 

그냥 가보자!

거기 뭐가 있는지!

구덩이 혹은 함정.....참회록...후안무치 厚顔無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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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른 시 한 편]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다가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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