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와 비금도 염전(鹽田)에 심은 변장(變裝)된 진실
정오의 염전(鹽田)은 날선 태양을 품고 있는 하얀 포해자(抱孩子)였다.
도요새는 창(窓)이라고 부르던 네모난 염전으로 먼지처럼 반짝이며 들어
갔다. 염도 높은 물이 도요새의 발목까지 찰랑거렸다. 머리를 조아리며
네 개의 발가락을 부리로 쪼아 염전에 발을 심는다.
날선 태양을 품은 포해자(抱孩子)는 도요새의 빨간 발목에 태양의 날을
대었다.
잘려나간, 도요새의 발, 발은 거기 염전에,
발 없는 도요새는 빛이 되어 태평양을 건넜다.
나는 염전의 수차(水車)를 돌리는 무당이다. 나의 말(言)은 없었다. 변장
(變裝)된 진실들을 풀어놓으며 몸을 흔든다. 발로 선 것이 아니라, 흔들림이
나를 서게 한다. 내 변장(變裝)된 진실은 도요새의 것이 아니었으나, 발 없
이 빛이 되어 날아온 도요새는 수차 위의 나를 부정(否定)했다.
나는 결국 맨발로 염전에 서고 말았다. 육모(六母)진 하얀 소금이 타고 올
라온, 날카로운 태양광선이 꽂힌, 염전에 심겨진, 꼼짝 못하는 발.
도요새는 머리 위를 난다.
내 발은 염전에 심어주리.
오늘, 내 발을 염전에 맡기리.
염전은 제 것이 아닌 것들을 품은 자의 발목을 잘라, 아물지 못한 발목에서
흘러나오는 변장(變裝)된 진실, 그 진물이 뚝뚝 떨어져.
발이 없어 서지 못하는 몸은 날아, 멈추지 못하고 몸은 날아, 또 날아, 도요
새가 날아, 빛으로 날아, 내가 날아.
비금도 염전에는 언제나 날아다니는 빛들로 가득하다.
많이 부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 전반적으로 부끄러웠으므로 부끄러움의 정체를 파악하기 조차 힘든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때의 부끄러움이 해소된 것도 아닌데,
그 부끄러움을 해결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할 터인데,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며 비금도의 무당이 되어서라도 어찌 견뎌보겠다는 그때와는
달리 지금 나는 무감하다.
우연히 신안에 있다는 에코섬 증도 이야기를 보다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의 염전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다가,
비금도 염전이 생각났다. 더불어 비금도를 보고 썼던 <도요새와 비금도 염전(鹽田)에 심은 변장(變裝)된 진실>이 떠올랐다.
이 시를 찾기 전에 류시화시인의 유명한 시 <소금>을 먼저 찾아보았다. 그저...
언젠가 읽었을 때 받았던 강한 느낌과는 달리, 좀 나른하다 생각이 되었다.
소금은 그런 것이 아닌데..
각진 소금, 생각만으로도 쪼그라들고, 쓰라린 것.
적어도 내게 소금은 가장 극대화된, 적극적인 투입되어
주체와 객체의 혼돈, 그리고 남겨진 진실에 가까운 유기체, 그 시간을 메우는 것은 주객이 엉키는 고통
나는 소금을 생각하면 시간을 메우는 고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삶 자체가 많이 부끄러웠던 그 때, 아마 그 정도의 마음으로 긁적였던 시.
<도요새와 비금도 염전(鹽田)에 심은 변장(變裝)된 진실>이다.
지금 다시 보아도 정말 많이 부끄러웠나보다.
뭐가 그리 떳떳치 않아 덮어지지도 않는 모호함으로
규정되지 않는 잣대로 그저 나를 벌주려하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오래다면 오래고, 오래지 않다면 오래지 않은 어느 날에 쓴 시를 다시 읽어보며
그래도 그때는 예민한 통점[pain spot, 痛點]을 가지고 있었구나 생각한다.
행여....., 그럼에도 살고자 소금을 찾은 것은 아닌지 몰라.
이 시를 쓰고 나는 살아난 것은 아닌지 몰라.
세상이 말라가는 계절이다.
나무처럼, 풀처럼, 내게도 마른 풀내가 날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른 풀내를 풍기며
소금이 아니라 가을햇빛에 나를 말릴 필요가 있다
소금
류시화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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