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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그것마저도 이겨내지 못하면 당신은 사랑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by 발비(發飛) 2013. 9. 24.

 

미모의 아나운서 정도라면 대부분 재벌가의 아들이나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을 하기 마련이다. 아나운서만이 아니라 딸을 가진 부모들의 심정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고민정 아나운서는 밥벌이와는 관계가 먼 시인과 결혼을 택했다. 그것도 결혼할 남편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와 주변 근육이 대나무처럼 굳어가는 통증이 있는 병이라고 한다. 얼마 전 고민정 아나운서는 모 방송국 프로에 나와 자신을 이렇게 좋은 아나운서로 만들어준 것은 대학 때 만난 남편 때문이라고 시인 남편을 존경한다고 했다. 남편 조기영 시인은 아내가 명품백 하나 없다는 것에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물질에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가 바로 진정한 명품녀 아닐까.
OECD 국가 중 이혼율 1위라는 한국사회의 결혼생활에 이 두 부부는 또 다른 한 면을 제시한다. 조금 힘들다고 어렵다고 아프다고 견디지 못하고 기다리지 않고 싸우고 상처받고 쉽게 헤어지고 만나는 요즘의 사랑에 이 두 부부의 사랑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 둘의 사랑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말한다.

“그것마저도 이겨내지 못하면 당신은 사랑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권대웅(시인/ 마음의 숲 출판사) 대표 페이스북 중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좋아해 버릴까 생각했다.

좀 더 솔직하자면, 음침한 사랑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기프로그램인 [짝]에서 간 보고 어장관리하고 밀땅을 엄청해놓구선

최종선택의 순간,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고 약 바짝 올린 상대를 한 큐에 보내버리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난 아니야.

너도 아닐거야.

 

자괴감에 빠졌다.

출근길에 아직 이슬 젖은 풀잎들을 물끄러미 보며, 나는 언제 이렇게 약은 인간이 되었나. 하고 머리를 때렸다.

정신차려!

일하는 중 문득 '넌 점점 더 재수 없어져. 엄청나게 내가 맘에 들었는데, 이젠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없는 년이 되어버렸어.'

꺼져버려! 하고 애꿎은 자판을 여덟개쯤을 동시에 쳤다. 워드에는 '닐...' 이렇게 한 글자만 남겨졌다.

 

지난 주, 그제, 어제, 오늘... 점점 무거워진 나를 끌고 있다.

재수없지만, 몸의 주인인 나를 너를 끌고 가겠다.

그 끝이 어찌 되는지 보겠다.

현재는 영육분리... 내 목표는 영육합체.

 

그러다 어쩌다

권대웅시인의 페북을 보다가...

예스24에서 본 적이 있는, 광화문교보서점에서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책을 또 본다.

이게 여기서 나왔구나...

우선 권대웅시인의 글이 참 좋았다.

달콤하다가 쌉쌀하고, 맵다가 느끼하고....

개떡같은 원고들과 사투를 벌이던 차라, 반갑구나, 간만에 글이구나, 하면서,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스크롤바를 계속 내려가며 읽었다.

 

그 끝에 권대웅시인이 고민정아나운서의 말을 인용한 한 문장에서 완전히 멈췄다. 

 

그것마저도 이겨내지 못하면 당신은 사랑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만났다.

철도건널목 차단기가 막아선 철길로 쌩하게 지나가는 서울행 기차.

 

내가 이런 사랑을 어떻게 해.

사랑이 이런 것이라면, 모두가 못하더라도 나는 할 수 있어.

 

정확히 두 가지로 상반된 입장이 내 코 앞에서 빤빤히 나를 쳐다본다. 마치 나를 시험하듯.

나는 이곳 서울에서 현재를 사는 이상생물체가 되어버렸다.

 

징그럽다. 징그럽다.

 

 

51. 당신은 내게 그러하다

 

 

한 여름 소나기 내리던 날

소나기를 맞으며 당신이 내게 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이다

 

당신이 철철, 그리 내린다면

난 당신이 내리는 하늘 아래 술잔하나 들고 서 있으리다

내 술잔에 비로 내리는 당신을

담기는 대로 한 컵 한 컵 받아 마시다가

 

내 속으로 흘러들어간 당신이

식도를 긁어대더라도

위장들의 벽을 두 주먹으로 쳐대며, 내 애를 사정없이 끓이더라도

나의 속에다 그냥 두리다

당신이 울컥거리며 개워져 나오려 한다해도

난 두 손으로 내 입을 막고서라도, 그렇게라도 당신을 내 속에 두리다

 

당신은 내게

올 여름 소나기 억수로 내리는 날

술로 흘러내리는... 당신은 내게 그러하다.

 

 

-李春芳

 

한때는 너무 뜨겁고, 한 때는 너무 차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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