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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이헌승 떠난 지 20년-D1

by 발비(發飛) 2012. 4. 7.

20년 전 오늘 머리가 멍했다.

 

아침부터 성당사람들이 몰려왔다.

오빠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 주문같은 기도를 하고, 성가를 부르고, 번갈아 가면서 오빠의 손을 잡았다.

살아있음에도, 죽은 사람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오빠는 그들이 건네는 말에... 참 잘 웃어주었다.

우리 식구들은 그때도 지금도 웃는 것이 이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식구 수대로, 단체로...

오빠의 그런 몰골로 그런 웃음이라니... 그 대비가 경이로울 정도였다. 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에게게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때쯤 오빠가 잠시 사라졌다.

그러고보니...기억이 잘 못 되었다.

.

.

.

 

하루가 더 있어야 하는데....

어느 하루, 그럼 그 전에 내가 병원에 있었던 적이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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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든 여자 아이가 병실로 왔었다.

나보다는 작은 키에 봄 색깔 옷을 입었던 것 같다. 약간 촌스러웠다.

오빠는 그 여자아이를 보자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병실 밖에서 기다렸다.

십분도 지나지 않아 그 여자아이.. 아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라는 기준은 지금 생각이고, 사실 대학생이었다.

병실에 들어갔다.

꽃이 그 여자가 앉아있었을 의자 위에 놓여져 있었다.

오빠는 그 꽃을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다.

그 때 오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예 쳐다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꽃을 들고 나와 쓰레기통으로 가다가, 지나가던 눈에 익은 간호사에게 주었다.

꽃은 한 두 송이가 아니라 한 다발이었다.

간호사가 이걸 왜? 하는 눈으로 보았던 것 같고, 나는 꽃병이 없어서요, 하고 말했다. 이쁘다고 했다.

나는 오빠는 한 번도 그 여자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지만, 그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오빠가 마지막으로 좋아했던, 그렇지만 처음으로 착하고 순한 여자 같았다.

오빠는 잘 생긴 얼굴덕분에 어릴 적부터 나름 인기가 좋았고, 나는 나 자신보다, 인기 많은 오빠의 여동생으로 존재감이 더 컸을런지도 모른다.

그동안 오빠는 똑똑하고, 세련된 여자들을 좋아했고, 만났었는데... 좀 다른 종류의 여자였었다.

나는 병실로 돌아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그날이었던 것 같다. 오빠가 사라진 날......

오빠가 병실에서 사라졌고, 아버지와 엄마, 나는 오빠를 찾아 온 시내를 다 돌아다녔다.

몇 시간 뒤에 찾은 오빠는 시청 옆 어디에 놓인 의자에 어쩌지 못해 앉아있는 걸 아버지가 찾았다.

걸을 수 없어서 어디 가지도 못했을, 그 날.....

 

그날은 죽음의 얼마쯤 전이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

.

.

성당 사람들이 갔다.

나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왜 자꾸 저 사람들이 오냐고..., 우리가 왜 저 사람들을 접대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하느냐고...

 

오빠와 나, 둘이 되었다.

 

오빠는 교열이가 참 고맙다고 했다.

교열이 오빠는 오빠가 서울 병원에 있을 때 정말 잘 했다.

퇴근 후에 매일 오빠를 찾아왔고, 같이 산책을 했고, 근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어주었다.

나도 교열이 오빠가 고맙다고 생각했다.

 

식이 오빠는 섭섭했다고 했다.

보고 싶은 데 한 번도 오지 않는다며... 이상하지? 왜 그러지? 그랬다.

나도 식이오빠가 섭섭하고 미웠다.

 

그리고... 나한테는 미안하다고 했다.

번번이 자기가 나의 앞을 막는 것 같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진짜 미웠다.

대답을 안 했다. 화가 난 얼굴로 창 밖을 보았다. 4월은 정말 눈부시도록 환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오빠가 내 손을 툭 쳤다. 나도 오빠 손을 툭 쳤다.

나는 오후 내내 화가 났다.

내 앞길을 번번이 막는 오빠때문에...

 

저녁이 되어 아버지는 병원으로 퇴근을 하셨고,

우리는 사람들이 가져다 준 밑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티비도 보지 않고, 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낮에 복수를 빼서 푹 꺼진 오빠의 배를 한 번 보기도 하고,

앙상한 오빠 손을 만지기도 하고,

오빠를 부축해서 화장실을 몇 번 다녀오고,

오빠가 준 십오만원으로 언제 운전학원에 등록해야 할지 잠시 이야기 하고,

헌율이는 혼자 밥을 잘 먹나 궁금해 하면서, 전화 좀 하지 그런 생각도 하고,

 

모두 일찍 잤다.

아버지는 하나 더 잡아놓은  옆 병실에서,

엄마는 2인용 입원실의 남은 한 침대에서, 나는 간이침대에서....

오빠는 오빠 침대에서...

똑바로 누우라고 했는데, 숨이 차다며....

우리를 향해 모로 누워서...

 

우리는 모두 일찍 잤다.

 

20년 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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