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이불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자세를 바꾸느라 몸을 움직였다.
이불이 풀석하고 올랐다 내려갔다.
풀석..........풀석.
이불 속 답답한 공기가 훅 하고 밀려왔다.
몸의 냄새다. 분명 나의 몸 냄새일텐데...한동안 맡지 못했던 나의 냄새이기도 한 낯선 냄새...
우리들의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또 이어지고 있다.
때로 말머리를 바꾸고자 하였으나, 바꿔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말할 때는 이불처럼 나의 입술이 풀석거렸다.
숨을 잘게 나누어 한숨을 숨겨도, 풀석거림이나 풀석거림 이후에 나는 나의 낯선 냄새를 막을 수는 없었다.
입술을 들석일 때마다 들고나는 숨으로 풀석거렸다.
자주 몸을 바꿔 앉아야 하는 탓에 이불도 풀석거렸다.
괜히 여보세요? 여보세요? 라고 말했다.
출근을 하다가도 '풀석' 하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아직도 '풀석'이라는 단어가 내 입술에서 떠나지 않았다.
풀석거릴 때 나는 냄새는 좋지 않다
그래서 생각한다.
입을 열면, 몸을 들썩거리면,
안고 있는 것들을 활짝 펴 보이는!
노란 꽃수술, 꽃가루, 꽃향기... 머금은 꽃봉오리처럼...환하게 드러나는!
말.....이었으면!
내 품고 있는 것이 그런 것이었으면!
"어린 시절 입술만을 찍어놓은 어느 무명 사진가의 사진집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면서( 그 사람들의 눈동자를 상상하게 된다) 일으켰던 현기증을 생각해볼 때, 사람마다 다른 입술을 통해 보여주는 이 다양한 선의 '두께'는 묘한 울렁증을 일으킨다. )카프카의 세 연인들은 모두 다른 입술의 선을 가지고 있다) 입술을 보고 그 사람의 눈이 지금 어떤 말을 하려는지 예감하려는 이 심리적 환원은 대개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순간에도 자주 일어나곤 하는 현상이다. -김경주 <밀어, 몸에 관한 시적 몽상> 중 '입술'에서
몽상하는 눈동자는 몸을 배웅한다. 마치 불면이란 잠들지 않기 위해 눈동자가 몸 곳곳으로 그 시력을 배달하는 일이듯, 몸에게 그 시간을 허락해주도록 눈동자는 특별한 의문과 꿈을 제공했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말한 ‘상응’의 방식이거나 엘리엇이 시와 시극을 연대시키고자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까지 역설한 언어와 몸에 관한 친화력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렇게 보들레르는 중국인들처럼 고양이의 눈에서 시간을 본다고 했다. 「중략」 꿈이란 한 몸에서 서로 다른 눈들을 가지고 만나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눈동자가 우리 몸에 숨긴 유령의 배후이기도 하다. 몽상은 눈동자의 유령이기 때문이다.- 김경주 <밀어, 몸에 관한 시적 몽상> 중 '눈동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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