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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한용운] 책임

by 발비(發飛) 2012. 1. 6.

사람이라는 것은 권리와 책임을 자기 스스로가 가질 뿐 아니라, 추호도 남의 권리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요, 자기의 책임을 남에게 분담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한무궁의 진리다. 만일 자기의 권리를 침범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요, 상대자로서  자기의 권리를 침탈한 것은 아이다. 또한 타인으로서 자기의 책임을 분담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책임을 스스로 회피하는 것이요, 타인이 강탈하는 것은 아니다. 

-한용운 <님께서 침묵하지 아니하시면> 중에서


하나.

해가 바뀌면 일이 많아진다. 엄밀히 말해 일이라기보다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데 올해는 일도 많아졌다. 일년동안 어떻게 일을 할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다. 일의 성격이 바뀐 탓이다. 어쨌든 해야할 일의 슬로건을 만들고, 일의 범위를 정하고, 멤버들의 영역도 정하고... 그런 것들을 만들어가면서 상상 속에서 집 한 채 쯤은 지어진 듯하다. 그 집의 모양이 꽤 마음에 들기도 한다. 하지만 상상이라는 것은 위험성은 실로 막대하다고 생각한다. 기획 안의 상상, 그것에 빠져있지 않기 위해 실행의 범위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것들을 현실화 시켜야 하나하고 하루밤을 생각했다.  꽤 새롭고 폭력적인 단어를 쓰기를 좋아하지만, 내게 온 단어는 '책임'이라는 오래되고, 낡은 단어였다. '책임' 이 낡은 단어를 메모지에 낙서처럼 써두고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장사전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다른 단어에 비해 많은 말들이 있었다. '책임'이라는 단어의 카테고리 안에 소설이나 시에 인용된 것은 없었다. 케네디, 카네기 등과 같이 실용의 범위 안에 든 인물들의 말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찾은 말, 찾은 분... 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의 한용운님이 책임에 관해 남긴 말이다. 역시 정치가이기도 한 분이 분명하다. 나는 한용운님의 말씀에서 내게 온 '책임'이라는 단어의 해법을 찾고자 한다. 누군가가 내가 만들어놓은 권리를 침탈하지 못하도록 나의 책임을 분담하지 못하도록, 그래서 내 책임을 스스로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한동안 책임이라는 단어를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할 듯하다. 그것이 몸에 익을 때까지...


둘.

삶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 그보다 무서운 일이 있을까? 더구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경험이 그다지 없는 사람이 책임을 위해 밟아가야 할 단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위에 인용한 글 앞에 하나의 문장이 더 있다. 사람은 불행한 경지를 조우하게 되는 때에는 흔히 원천우인怨天尤人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책임에 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어지고 있는 선택의 순간들, 나는 매일 매일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매일 책임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선택의 영역에서 움직일 때마다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이 그것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역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너지가 많이 쓰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언젠가 감당하지 못할 책임으로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더는 책임지지 못할 상황에 내 삶을 또 누군가에게 강탈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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