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6. 30. 7시 45분>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찍해 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
"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가족의 성금란을 표시해 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
바깥을 거닌다, 바깥;
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
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 버리고 싶은 생;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견딜 수 없다
글쎄,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 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들어 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운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이리라
...
사진의 하늘... 내가 본 하늘은 이 하늘이 아니다.
푸른 기가 완전히 빠져야 한다.
어제 저녁 일곱시 반쯤 퇴근을 하는 길,
하늘은 검게 밀려오고 있었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는 내가 좋아하는 김경주 시인이 초대손님으로 나왔다.
김경주를 시집이 아닌 라디오에서 그 목소리로 듣다니...
시인은 삶의 거울 같은 존재이다.
그래야 한다.
찬찬히 볼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시인도, 시인의 시도.
암튼 김경주 시인은 황지우시인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를 낭송해주었다.
낮은 회색 하늘과 비 온 뒤의 어떤 맑음, 그리고 시인의 목소리
또...시...
옆으로 흐르는 한강은 물이 불어 출렁거렸다.
처음으로 운전하는 것이 행복했다.
자유로의 곧게 뻗은 길 저 쪽 하늘로 그대로 밀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행주대교 진입로를 지날 때는
약간의 충동으로 흔들렸다.
그 때의 그 하늘을 오늘 아침에도 보았다.
파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길 끝에 있는 하늘이 어제와 닮았다.
찍고 싶었다. 하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좌회전을 해서 사무실로 들어왔다.
언제나 같은 내 자리, 의자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산 너머 하늘은 그 하늘이 아니었다.
길 끝의 하늘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바깥을 거닌다. 바깥
황지우 시인이 말한 바깥... 이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오늘은 안에서 몇 개의 제안서를 마무리 해야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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