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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파키스탄] 훈자, 별들에게 소원을

by 발비(發飛) 2010. 7. 20.

내가 여행에서 사랑하는 것은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지에서의 일상이다.

그것은 너무나 특별하다.

여행지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상이 일상이 된다.

몇 년 전 여행길에 파키스탄의 훈자에서 열흘정도를 살았던 적이 있다.

멋진 풍경사진이 아니라 일상의 사진을 올린다.

 

 

감히 여행 중이었으면서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보다시피 김치까지 만들어 먹었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으신다면,

김치는 야채가게에서 양배추, 양파, 총각무 비슷한 거, 고춧가루, 소금을 사서,

담아온 비닐봉지로 양푼을 대신...하고, 페트병을 잘라 보관통으로 썼다는.

중국라면은 일명 돼지꼬리라고 부르는 스틱히터로 인스턴트의 대표주자인 라면을 요즘 대세인  슬로우푸드 변신 시켜버렸다.

하루에 한끼는 이렇게 해결했다.

21세기 필살기 해법인 궁즉통(窮卽通)을 제대로 실천했다고 말하리라.

 

-잠시 딴 소리-

 

‘궁즉통(窮卽通). 통하기 위해서는 궁해야 한다.

이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서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통즉구(通卽久)를 줄여서 한 말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변하기 위해서는 먼저 ‘궁(窮)’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데,

이 때‘궁(窮)’은 ‘곤궁하다’는 뜻이 아닌 ‘궁구하다’ 또는 ‘다하다’의 뜻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잠시 딴 소리 끝-

 

그러고보니 밑에  사다리가 보이네.

내가 살던 게스트하우스는 2층이었는데,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딸 때도, 시장을 갈 때도... 하루에도 몇 번 씩 저 사다리로 오르내렸다.

개인적으로 안나푸르나의 기점으로 유명한 네팔의 포카라를 쉬는 곳, 휴양지로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포카라에 쌍벽을 이룰만한, 감히 영혼이 쉴 수있는 곳으로 훈자를 강추한다.

  

 

ㅋㅋ 웃기부터 해야 한다.

2층 나의 방에서 한 발자국을 나오면 이런 풍경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계곡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일상을 보라.

저 남자는 내가 있는 내내..., 여기서 문제가 나간다.

 저 집을 만들까요? 뜯을까요?  답은 뜯고 있다.

저곳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던 식당인데 불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뜯고 있는 중인데, 하루에 한 줄을 못 뜯는다.

히말라야 너머에 있으니, 우리가 당연히 수급할 수 있는 것들이 부족하다.

저 블록들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 정과 망치를 써서 하나하나 곱게 뜯는 중이란다.

지금은 다 되었을까?

저 남자는 종일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기도하는 시간을 빼고는 해가 있는 동안은 내내 저렇게 일을 하고 있었다.

율도국을 세워 어느 산자락에 들어가서 살아도 될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저렇게 느린 것이 허용되고, 느린 것이 익숙해진다면 세상 모든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용이다.

장기여행 중이라 수염을 깎지 않아서 그렇지, 저때만해도 20대였다.

이 친구와 나는 한 달이 넘는 동안 국경을 몇 개나 넘어가며  여행을 한 사이다.

요즘 얼마동안은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사진을 떡하니 올려도 될란가 모르겠다.

멋진 청년이니 혹 마음에 드시는 여성분이 있으시다면 댓글도 환영한다는 멘트를 달아야 용서를 받을 것 같다.

참 고맙고도 든든한 여행 동지이다.

철저하게 독립적이어야만 배낭여행을 품위있게 마칠 수 있다는 것을 저 친구를 통해서 배웠다.

"여행자는 누군가의 꿈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여행을 해야한다."

"여행의 최고 목표는 여행의 지속이다."

이런 명언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매일 오후가 되면 그날의 빨래는 그날 해결해야 한다.

하루라도 밀리면 세수할 때 겸사겸사 해결할 수 있는 분량을 넘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옆에 줄줄이 커다란 양말 두 짝은 내가 먼저 빨아둔 거구나.  그 날은 내가 먼저 빨래를 했나보다.

근데 빨래 너는 저 친구 뒤로 보이는 계[곡!  그 이름도 유명한 바람계곡 나우시카의 배경이다.

나는 매일 이곳에서 눈을 감고, 눈을 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믿을 수 없는 것은 둘째날 부터는 그것이 일상이 되어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저녁시간이 되면 어슬렁거리며 윗동네로 올라간다.

그곳에 가면 저렇게 양꼬치를 구워서 판다. 그 옆으로는 난을 만들어파는 화덕이 있다.

난에다 양꼬치를 쓱 뺀 뒤, 돌돌 말아서 먹으면 그 맛이 최고지.

매일 매일 나도 그들처럼 주식으로 먹었다.

일상이니까...

너도 나도 그냥 서서 마냥 기다렸다가, 주면 받아서 오고

좀 더 기다리라면 앞 산 한 번 보고, 앞 계곡 한 번 보고... 기다리면 되지.

그 곳에선 시간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분위기 이상하다고?

중국과의 국경에 있는 소스트라는 곳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빈대 대박 물렸다.

정말 빈대 한 마리 죽이려고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말을 실감했다. 초가삼간을 태워서라도 빈대는 죽여야 한다.

너무 간지러워! 지독하게 간지러워!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 간지러워서 죽는 줄 알았다.

아침에 소스트를 빠져나오려는데 차가 없다.

그래서 지나가는 트럭을 히치해서 타고 가는데 어찌나 추운지 상상하지 못할 거다.

현지인이 저렇게 담요를 둘렀을 때에야 얼마나 추운지, 그래도 저 사람들은 바람을 등지고라도 있지. 나는 바람을 맞으며 있었다.

그래도 차를 얻어탄 것이 어딘데.. 저렇게 한 시간을 넘게 간 것 같다. 그 다음에는 트랙터를 탔다.

지금 생각해보면, 간지러워서 제 정신이 아니었나.. 아닌가? 제 정신이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멋진 곳이 우주가 아니고 지구에 있었구나 였다.

그들은 여기가 일상이었다.

이 길로 쭉 가면 중국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랑 이어진다.

여기가 바로 실크로드지. 

 

 

 

에델바이스를 울트라피크에 올라가다 발견했다.

파삭파삭한 꽃이 그 높은 곳에, 그 추운 곳에 피어있었다.

에델바이스를 감아 쥐었을 때의 느낌이 기억난다.

나는 꽤 깊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억이 나지만 그것을 다시 결심하지는 않고 싶다. 그러고보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귀엽지.

훈자사람들은 위구르족 아이들이다.

국경이 나눠져서 오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국가이념이 달라서 더욱 자유롭지 못한

중국의 신장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같은 민족이다.

나는 작년에 중국의 신장자치구 시위가 한창이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었다.

티벳이 그런 것처럼, 위구르의 신장지구도 그들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평화롭게 그들 민족의 개성에 맞게 살아가는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평화로운 마을이었고, 느리게 사는 마을이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마을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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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갑자기 훈자가 떠오른 것은 별 때문이다.

일을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가 캄캄한 하늘을 보았고, 뭔가 그리운 어느 순간이 생각났다.

저 위에 있는 친구 준용이가 있었고,

호주에서 할리데이로 돈을 벌어서 아프리카와 유럽, 터키, 이란을 거쳐 온 친구가 있었고,

이집트에서 일을 하다가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쉬고 있는 친구가 있었고,

중국에서 넘어온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해가 지면 할 일이 없는 여행자였다.

(선진국의 도시여행과는달리 오지여행은 캄캄해지면 무조건 숙소에 있는 것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최고다.)

 

밤이 되면 각자의 방에서 의자를 하나씩 꺼내와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고 앉았다.

은하수가 구름처럼 선명히 보이는 곳이다.

"첫 날 밤, 저거 혹시 은하수 아닐까?" 내가 말했다.

"에이, 구름이지." 준용이가 말했다.

"아니야. 은하수 같애. 정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내기하자." 내가 말했다.

"그래. 설마 저게... 구름이겠지." 준용이가 말했다.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밤하늘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그 뿌연 것이 뭐냐고 물었다.

"밀키웨이." 주인이 말했다.

정말 처음에는 구름인 줄로 알았을 정도로, 왜 은하수가 영어로 밀키웨이인지 납득이 되었다.

그 정도로 하늘이 가까운 곳이다.

은하수가 그럴때 다른 별들을 상상해 맡겨 보시길, 아쉬운 것든 별은 마음에 담아올 수 밖에 없는 거라는 것이다.

 

정말 오늘 그 밤들이 그리운 것은 별똥별때문이다.

캄캄한 하늘에서 별똥별이 5분, 10분 간격으로  길고 가는  선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정말 휙 휙하고 선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기가 막혀서 처음에는 소리도 안나왔다.

그러다가 그것도 일상이 되어 별똥별과 장난을 치기 시작한거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그 타이밍에 소원빌기에 모두 도전했다.

일확천금을 부르짖는 친구도 있었고, 여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도 있었고, 나를 포함한 비밀소원그룹도 있었다.

우리는 소원을 계속 중얼거렸다.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중얼거리다보면 별똥별이 걸리는, 그런 전술이었다.

아마 서너 시간을 그렇게 소원만 빌었던 것 같다.

 

그것이 생각났다.

 

서너 시간동안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하늘에다 대고 소원만 빌었던 훈자의 하늘이 생각났다.

역시 준용이의 말대로 여행자는 누군가의 꿈길을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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