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배경처럼 더운 여름이다.
앞 베란다의 창을 모두 열어놓고, 맞은 편 현관문을 열어두었다. 방 가운데는 선풍기가 돌아간다.
선풍기 옆에 의자를 두고 단숨에 이 소설을 다 읽었다.
작은 도시에, 모든 상황과 근거리에 있는 여자, 카자미가 있다.
근거리, 상황과 가까운 거리, 그것은 곧 상황은 아니다. 가장 자세히 볼 수 있지만 지배되지는 않는다.
그녀의 고교시절 애인이던 남자가 있었다.
번역을 하던 중년의 남자 쇼지, 쇼지는 N.P라는 소설을 번역하던 중 자살을 한다.
이 남자가 번역하다 그친 원고를 유품으로 가지고 있다. 묵직한 시계와 함께...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이 그녀가 살고 있는 작은 도시로 모여든다.
소설의 원작자인 다카세의 쌍둥이 남매 오토히코와 사키, 그리고 이복형제인 스이.
소설가 다카세는 스이가 자신의 딸인 줄 모르고 사랑을 한 이야기를 NP의 아흔 여덟번째 단편으로 쓰던 중 자살을 한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은 스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를 사랑한 스이는 아버지가 죽고, 이복남매인 오토히코와 사랑을 한다.
진한 피가 눈이 세개인 아이를 낳을 수도, 손가락이 여섯개인 아이를 낳을 수도.... 있지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좋은 남자와 결혼을 하여 이복 남매인 오토히코의 아이를 낳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그들의 곁에서 떠난다.
떠나기 전에 묘하게도 약을 먹은 카자미와 키스를 하고, 동성애까지...
그녀의 말대로 금기 삼종세트.
그녀가 맛이 간 끝장 여자라고 하면 그렇고, 이 모든 것을 넘은 도 튼 여자라고 하면 그렇고,
정말 백지 한 장 차이다.
마치 사마리아의 여자처럼.
카자미는 스스로 스이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먼저 그 집을 가지도 않았다.
그것은 스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저주의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카자미는 스이와 오토히코가 자살을 할 것이라고 매일 초재기를 했다.
스이를 둘러싼 죽음과 저주의 기운은 느낄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카자미는 죽음의 기운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을 저주와 죽음이라는 구렁텅이에서 적극적으로 빼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더 갈 곳이 없는 인간들에게 더 가라고 우긴다고 될 일은 아니지.
다행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결론부분에서 ...
그들이 (오토히코와 스이)가 동반자살을 했어도 식상했겠지만, 스이를 미리 말한바와 같이 전혀 생뚱맞은 인물과 함께 떠나보낸다.
오토히코와의 근친상간으로 잉태한 자식을 낳을 거라는 편지를 카자미에게 보낸다.
정말 사회적 잣대로 보면 악의 전형이다.
그리고 결국 작은 도시에 남은 두 사람, 오토히코와 카자미.
모두가 자살하거나 떠난 도시에 남은 카자미는 바다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 혼자 남아있을 오토히코를 생각한다.
함께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
아흔 여덟번째 이야기 중 카자미가 마음에 들었던 마지막 부분,
'아름다운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리라' 를 오토히코가 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카자미는 스이가 준 옛 애인 쇼지의 유골을 불 속에 던지고,
오토히꼬는 아버지의 미완 원고를 불 속에 던지고,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울지마, 나도 울고 싶어지잖아."
"이제 다 울었어."
"옳지 옳지."
"함께 자 줄까?"
"내가 해야 할 말 아니야?"
"너를 좋아하는 걸까?"
"그만해."
"가을이 되면 생각하기로 하지."
"그래, 그렇게 해."
"그러기로 하지."
........아름답다, 모든 것이, 일어난 모든 일이, 미친 듯 격렬하고 아름답다.
소녀 취향의 소설이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읽은 박범신의 소설 <풀잎처럼 눕다>가 생각났다.
그때도 더웠다.
청춘이라는 것이 그렇게 덥다.
끊임없이 몸 밖으로 땀을 보내고 보내도, 덥다.
여름은 인간을 보다 본능적으로 만든다.
나는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카자미와 오토히코에게 다른 모습의 사랑이 남아있고,
스이는 오토히코의 아이를 낳을 것이다.
다카에의 소설은 여전히 누군가의 생명을 갉아댈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아흔아홉번째, 그리고 백번째의 이야기는 남아있다.
백개의 촛불을 켜두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촛불 하나씩을 꺼가며, 백개의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의 이야기에 얼마나 매달려 있을 수 있을까.
더는 못하겠다고 중도에 삶을 거두는 사람이 많다.
며칠 전 자살을 한 박용하도 생각난다.
뭔지 모를 답답함과 개운함을 함께 느낀 소설이었다.
마치 사마리아의 여자처럼.
나는 모두와 같고도 다르다.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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