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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대로 小說

[최인훈] 달아 달아 밝은 달아

by 발비(發飛) 2010. 5. 13.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마지막 부분)

 

최인훈

 

아이들; 그런데 아버지는 왜 없어?

심청; 그런데(생각하다가 이윽고)

        우리 아버지는

        내가

        오지 않으니깐

        (생각하다가 이윽고)

        용궁으로

        날

        찾으러

        갔지

아이들; 그래서?

심청; 그래서 (생각하다가 이윽고)

        우리 아버지하고

        우리 서방님하고

        같이 올거야

아이들:그래서?

심청; 그래서(머뭇거리다가)

        난

        기다리고 있는 거야

아이들; 기다리면

           오는 거야?

심청; (힘있게)

        암

        오구말구

아이들; 그래서?

심청; 다야

아이들; 정말 다야?

심청; 정말 다야.

아이들; (우르르 일어서면서)

           청청

           미친 청

           청청

           늙은 청

 

아이들 달아나면서

청청

미친 청

청청

늙은 청

놀리면서

달아나는 소리

멀어진다

홀로 남은

심청

 

심청; (아이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녀석들

       거짓말인 줄 알구

       (알릴락 말락 웃는다)

 

차츰

짙어지는

어둠

이윽고

캄캄해지는 무대

오랜

사이

불쑥

떠오르는

둥근 달

그러나

멀리서

아이들의 노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은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되풀이되는

노랫소리

어굴을 드는

심청

귀를 기울인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물결치는 소리

심청

품속을 더듬는다

한참 만에

반동강짜리 거울을 꺼내

보이지 않는 눈으로

들여다본다

심청

교태를 지으며

환하게 웃는다

갈보처럼

 

 

최인훈이 심청을 갈보라 했다.

내내 봐주다가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듯, 마지막에 '갈보처럼'이라고 욕을 하고는 막을 내려버렸다.

심청전이 희곡으로 여러번 각색이 되어 무대에 올려졌지만,

최인훈의 <심청전>에 나오는 심청이 가장 나락으로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최인훈이 심청을 참아줬다.

아버지의 이기심에 의해 심청이 중국 상인에게 넘어갈 때도,

인당수에 빠지지 않고 중국의 매춘굴로 들어가 갈보로 살 때도,

김서방과 사랑을 하고, 그 덕에 아버지를 만나러 조선으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다시 해적들의 갈보가 될 때도,

갈보짓이 점점 더 나락으로.. 인형갈보짓을 할 때도,

작가는 용의 몸짓으로 심청을 봐줬다. 사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더니,

최인훈은 '갈보처럼' 이라고 욕을 함으로서 더는 거리를 두지 못했다.

사랑하지만, 바라보는 사랑을 하였던 최인훈은

심청을 더는 볼 수 없었다.

"그게 다야?" 하고 아이의 목소리로 몇 번이나 묻고, 또 묻고,

"그레 다야." 하고 심청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대답했고,

최인훈은 그래서 더는 볼 수 없었던 거다.

교태를 부리며 거울을 보는 늙은 심청보는 최인훈.

 

나도 같이 화가 났다. 많이 화가 났다. 최인훈처럼 화가 났다.

 

이 등신, 머저리, 냅두면 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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