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명관의 인터뷰 중에서
젊을 때는 다 힘들죠. 저는 그런 것이 문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저보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겠죠. 존 어빙이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가장 평범한 사람이 더 좋은 작품을 쓸 확률이 높다고요. 파란만장한 경험이 트라우마나 콤플렉스가 되어, 사건을 과장할 수도 있고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계를 보기가 어려울 수 있죠. 오히려 상처받지 않고, 평범하게 자란 사람들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처럼요. 우아하게 사셨잖아요.
누군가 또 말했다.
결국은 가문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 사람은 그 예로, 일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들었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매화라고 상징되는 이유, 인내라는 것도 좋은 가문에 근거한다고 말했다.
자신과 자신의 피에 흐르는 믿음, 기질 때문이라고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숭아꽃에 비유한다. 그 꽃이 화려하지만 결코 단정하지 않다. 그 열매가 달기는 하지만 벌레가 꼬인다.
그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뿌리가 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명관의 인터뷰를 보다가 일본의 두 영웅이 생각났다.
결국은 내면이다.
경험, 행하고 있는 것은 표면일 따름이다.
경험, 행동이 내 골수에 박혀 디앤에이까지 작용할 수 있도록 공고해져야 하는 것이다.
천명관이 나왔던, 책을 읽는 밤이라는 프로의 패널로 나오는 탁석환이라는 사람은
교양을 어떤 대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라고 했다.
그것이 내게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냐가 아니라, 반응을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많이 겪은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그릇에 담아 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자신의 그릇, 이라는 하나의 조건과
얼마나, 라는 두 번째 조건.
그것이 결국은 힘이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권을 쓰고 백권은 쓴다는 이야기가 실현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럼 방법은 하나이다.
온갖 것들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들을 겪자.
그리고 그것들을 뚝딱뚝딱 때려넣어서 평균을 잡아 내자.
그것이 축적되어 교양이 될 것이고, 거리가 될 것이고 균형이 될 것이다.
나에게 이런 주문을 한다.
.
.
.
'새겨듣는 曰(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무현 대통령 1주기 추모 선거운동 중-> 그들이 아니어야 한다 (0) | 2010.05.23 |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0) | 2010.05.23 |
유시민과 신념 (0) | 2010.05.15 |
[김예슬] 고려대 자퇴대자보 전문 (0) | 2010.03.13 |
[법정스님] 봄날은 간다 (0) | 2010.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