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아이가 말을 했다.
리버플이 너무 좋아요. 그런데 그 느낌이 이상해요. 리버플의 말만 들어도, 리버플이 이겼을 때도, 또 졌을 때도 가슴이 너무 뛰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거면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되는데요. 리버플은 사람이 아니라서 말도 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처음 그 아이가 이 말을 했을 때는 웃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 자꾸 떠올랐다.
아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더 쉽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사람 아닌 것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구나.
사람은 서로라는 것을 아는거구나.
사람 아닌 것의 대답을 듣기란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거구나.
나는 다만 뭐든지 열심히 해서, 직접 영국으로 가서 프리미어리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를 바란다는 말과
오랫동안 그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해 주었다.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You'll Never Walk Alone
리버플 팬클럽의 구호라고 했다.
신기한 일이다.
열일곱 아이가 사랑에 관한 의문을 던지다니,,, 난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런 사랑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리버플에 대한 사랑은 사람과의 사랑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쩌면 아이는 사람의 사랑에 대한 불신 같은 것때문에 리버플이라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내가 끊임없이 보살펴줘야하는 대상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목을 메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보니, 이 아이가 어렸을 때 당시 라이온킹이라고 불리던 이동국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필드에서 게으르다고 지탄을 받을 때
기도를 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무슨 기도를 해주고 싶냐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이동국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 그럼 열심히 할텐데.. 하고 말했었다.
또 그러고보니, 아이의 말에 따르면 리버플 또한 다른 구단보다는 돈이 없어서 힘이 든 상태라고 했다.
그래서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더 나갈까봐 그게 걱정이라고 했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이 아이가 천사같은 착한 마음을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런데 그건 아닌데..
그것 또한 참 신기한 일이다.
인간이 참으로 오묘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삶과는 별도로 움직이는 마음 자리 어느 한쪽, 그 자리는 신성불가침의 구역처럼 누구도 오염시키지 않는 공간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않고,.
자신의 자리가 혼탁하며 혼탁할수록 더 선명히 밝은 정(精)을 뿜어내는 어느 지점 말이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랑할 땐 어떡하죠?
하고 묻는 말에는 답을 할 수 없었지만,
너의 사랑이 확실한 것은 분명하구나.하고 지금이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 같다.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사랑할 수 있는 정(精)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을 말하면 알까..
난 그렇게 생각하며...
좀 오랜 시간이 지난 아이가 스무살이 넘고 서른살이 되기 전 어느 즈음에,
난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 참 많이 부러웠다고도 함께...
사람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을 깨끗이 사랑할 수 있는 정(精) 또한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화살기도를 해 본다.
누구보다도 맑게 웃는 모습일 것이다.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랑할 땐 어떡하죠?
------그것 또한 사람이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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