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이 하얗게 되었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눈으로 하얀데, 집 안은 소금으로 하얗다.
언젠가 왜 인지는 모르지만 몇 년째 한번도 쓴 일이 없는 천일염이 커다란 통에 가득 있었다.
몇 번의 이사동안에도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끌고 왔던 소금통.
소금을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소금을 집안 가득 뿌렸다.
침대 위에는 이불이 있었고,
방바닥에는 벗어놓은 옷이 그대로인데,
아무 생각 없이.
아니 잡귀야 물러가라.. 였다.
나를 압도하고 있는 나쁜 것들, 다 물러가라.. 였다.
작은 집이 하얗게 소금으로 덮혀있다.
맨발로 방을 걸으면 모난 소금이 발을 찔렀다.
양말을 신거나 슬리퍼를 신지 않았다.
그저 맨발로 모난 소금을 밟고 다니고 싶었다.
나는 할 일없는 사람처럼 방바닥에 뿌려진 소금을 밟고 왔다갔다 했다.
순간이었다.
내가 무엇때문에 방 가득히 소금을 뿌렸는지, 짐작은 간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모른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보는 사람은 뭐야? 하겠지만 난 나 자신을 추궁해 알고 싶지 않다.
나는 방 가득히 소금을 뿌리고 싶었다.
소금을 밟고 다니고 싶었다.
발바닥이 아팠지만, 그냥 그렇게 한참을 있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 나는 나를 내버려두고 싶었다.
하얗게 된 집을 보면서... 고백을 하자면, 마치 무병에 걸린 여자처럼 뛰고 싶었다.
누군가 보고 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미친년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순간이 지나자 나 스스로가 미친년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책꽂이 위에도, 화장품 위에도, 침대 위 이불에도.. 침대 아래도... 거울 뒤에도 .. 냉장도 틈새도... 벽에 걸어둔 옷에도 .. 탁상시계에도.. 티비 위에 앉아있는 곰돌이 인형 팅이에게도...체중계 아래에도... 모두 소금이었다.
위에 있는 소금은 먼지털이로, 아래에 있는 소금은 빗자루로 치우기 시작했다.
소금들은 희한했다.
위에 있는 소금들을 모두 털어내어, 방바닥으로 내려놓으니...소금들이 두둑했다.
청소기로 소금들을 치울수도 있었지만, 빗자루로 쓸어내고 싶었다.
빗자루를 눕혀 소금을 쓸어내자 방바닥들 빗자루가 쓰는 것이 아니라 소금이 방바닥을 쓸어내는 느낌이다.
무릎으로 기면서 쓸어내는데,,, 기분이 좋다.
뭔가 소금에 묻어 나는 느낌이었다.
소금이 조금씩 녹으면서 끈적거림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서 더더욱.. 뭔가가 소금에게 묻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소금을 다 쓸어담았다.
한통만큼의 소금이다.
하얀소금이 잿빛소금이 되어있었다.
걸레질을 했다.
걸레도 잿빛이다.
오늘이 된 내일은 새해 첫 출근날이다.
사적인 나는 사흘전에 새해를 맞았지만, 공적인 나는 내일이 새해이다.
소금 고수레를 한 것은 어제의 일이다.
나는 한 판 고수레를 하면서 새해를 맞이했다.
오직 자신의 생을 위해서 고수레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으로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생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소금을 뿌리던 그 순간의 진정, 그것이 기억난다.
살기를 바란다.
살아내기를 바란다.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협하는 것들... 내 곁에서 떠나라! 물러나라! 떨어져라!
그래, 그랬었다. 그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만두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지만 나는 다시 하기로 했다.
소금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날려버렸듯이, 그러느라 어느 소금 하나 모나지 않은 것이 없듯이.
그것이 나의 맨발을 찌르던 그 날카로움이었다는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며,,
2010년은 그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소금고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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