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볼펜 하나
최승자
하루에 볼펜 하나
볼펜 하나에 하루
하염없이 걸어서
볼펜 하나 속의 짧은 길을 걸어서
하루에 볼펜 하나
볼펜 하나에 하루
짧은 인생 하나
뭉뚱그리 큰 하늘 하나 지우고 있다
시간 밖에서 다른 하늘 하나 터진다
소위 편집자라고 말하면서 서점을 다니지 못했다.
물론 책도 만들수 없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갔었다.
그 낯섬이란... 기가 막혔다.
일주일에 두번씩 서점을 다닐때는 어떤 종류의 책이던지, 신간이 나온 것을 단박에 알았다.
그래서 신간이 트랜드도 알 수 있었다.
오늘 광화문 교보의 책들은 나에게 모두 신간이었다.
심지어 오랜 전에 출간된 책들 중에는 표지갈이까지 해서 마치 신간인 듯이 가지런히 있었다.
이런...
이건 아니었다.
어느 곳에서도 이건 아니었다.
멍하니 한참을 책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다시 책의 결대로 내가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침에 <내 생각>이라는 것이 압도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내 생각>이 없었음이 교보에서 증명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손에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문제다.
극복해야 할 시간이다.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2년의 시간이 한덩어리의 돌인듯 다가오는.
마치 빚이라도 진듯이 달려드는 시간의 무게.
교차점이다.
터미널이다.
오고가는, 아니 갈 곳이 정해진 사람에게는 명확한 곳이며 시작점이지만,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하는 접점인 터미널이다.
터미널의 무게는 떠나려는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것이다.
떠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신천지의 시작이기도 하고, 천지의 끝이기도 하다.
나는 왠지 지금 내가 선 곳이 터미널같다.
이미 가방을 든 채 서 있다.
새로운 시작이길 바란다.
어렴풋한 기억한 자락을 잡듯, 편집이라는 기억을 붙잡고 나는 그곳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려 한다.
한번도 가보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이다.
가는 길을 물어야 할 것이다.
길을 아는 어린 아이기도 하고,
나이 많은 할머니이기도 할 것이다.
길 모르는 사람에게는 길을 아는 사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터미널에서 싼 짐이, 견디기 힘들만큼 무겁지 않길...
터미널에서 타는 버스가, 견디기 힘들만큼 멀리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난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교보문고에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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