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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다가오는 터미널

by 발비(發飛) 2010. 3. 2.

하루에 볼펜 하나

 

최승자

 

하루에 볼펜 하나

볼펜 하나에 하루

하염없이 걸어서

볼펜 하나 속의 짧은 길을 걸어서

하루에 볼펜 하나

볼펜 하나에 하루

 

짧은 인생 하나

뭉뚱그리 큰 하늘 하나 지우고 있다

 

시간 밖에서 다른 하늘 하나 터진다

 

 

 

 

소위 편집자라고 말하면서 서점을 다니지 못했다.

물론 책도 만들수 없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갔었다.

그 낯섬이란... 기가 막혔다.

일주일에 두번씩 서점을 다닐때는 어떤 종류의 책이던지, 신간이 나온 것을 단박에 알았다.

그래서 신간이 트랜드도 알 수 있었다.

오늘 광화문 교보의 책들은 나에게 모두 신간이었다.

심지어 오랜 전에 출간된 책들 중에는 표지갈이까지 해서 마치 신간인 듯이 가지런히 있었다.

 

이런...

이건 아니었다.

어느 곳에서도 이건 아니었다.

멍하니 한참을 책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다시 책의 결대로 내가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침에 <내 생각>이라는 것이 압도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내 생각>이 없었음이 교보에서 증명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손에 잡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문제다.

 

극복해야 할 시간이다.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2년의 시간이 한덩어리의 돌인듯 다가오는.

마치 빚이라도 진듯이 달려드는 시간의 무게.

 

교차점이다.

터미널이다.

오고가는, 아니 갈 곳이 정해진 사람에게는 명확한 곳이며 시작점이지만,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하는 접점인 터미널이다.

터미널의 무게는 떠나려는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것이다.

떠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신천지의 시작이기도 하고, 천지의 끝이기도 하다.

 

나는 왠지 지금 내가 선 곳이 터미널같다.

이미 가방을 든 채 서 있다.

새로운 시작이길 바란다.

어렴풋한 기억한 자락을 잡듯, 편집이라는 기억을 붙잡고 나는 그곳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려 한다.

한번도 가보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버스이다.

가는 길을 물어야 할 것이다.

길을 아는 어린 아이기도 하고,

나이 많은 할머니이기도 할 것이다.

길 모르는 사람에게는 길을 아는 사람이 유일한 희망이다.

그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터미널에서 싼 짐이, 견디기 힘들만큼 무겁지 않길...

터미널에서 타는 버스가, 견디기 힘들만큼 멀리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난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교보문고에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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