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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뭘 모르는 꽃봉오리

by 발비(發飛) 2009. 11. 3.

꽃이 얼겠다.

그것도 꽃봉오리다.

 

어제 오늘 참 추운날이다.

이름하여 구로창조길은 지난 가을 단장을 했었는데

그때 담을 타고 자랄 덩굴식물을 심었던 모양이.

사실 그곳에 덩굴식물이 있는지 생각지도 못하다가

어제 출근길 너무 추워 앞을 볼 겨를도 없이 땅에 코를 쳐박고 걷고 있는데

고개 숙인 어느 각에 분홍꽃이 피어있었다.

 

그런데 분홍꽃이 핀 꽃이 아니라 아직 꽃봉오리다.

마치 요술봉처럼 동그랗게 얹혀진 꽃봉오리는 추운지 더운지도 모르는 듯 하다.

뭘 알아야지 싶었다.

원래 그 꽃이 어느 계절에 피는 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팔꽃모양인 듯, 분꽃 모양인 듯 한 걸 보면 여름꽃인 것 같은데...

피지도 지지도 못하는 것이 왜 인지도 모를 듯 싶다.

 

뭘 알아야지 ...

꽃봉오리를 보면서 뭘 알아야지 하는 생각만 거듭 들었다.

 

스치는데 걸린 몇 초,

몇 초의 인상때문에 더 추워진 오늘 출근길 다시 꽃봉오리를 보았다.

아직도 그모양 그대로이다.

추운지도 더운지도 모를 꽃은 그저 덩굴줄기에 매달려있다.

너무 추워지면 손을 놓는건데..

그것이 누구인든..

너무 추우면 잡고 있던 원래 제 몸이 아닌 것은, 혹은 제 몸이 아닐 것은 분리가 되는건데,

아직도 피지 않는 꽃봉오리는 아마 하루에 몇 초 스치는 시간 외 어느 시간에 덩굴줄기에서 떨어질 것이다.

 

뭘 알아야지.

다시 한번 그 생각을 하면서, 쓴 웃음이 지어진다.

 

날이 춥다.

회사를 가고 학교를 간다.

회사일도 하고, 학교공부도 한다. 그리고 살기도 한다.

뭣도 모르고 깨어나보니 이곳이었다.

회사일이 서툴게 느껴지고,,,, 학교공부는 요즘 몸에 붙지 않는다. 그리고 내내 살았던, 사는 것 또한 낯설다.

구로창조길가에 딱 한 송이 핀 꽃봉오리인 셈이다.

어느 순간 덩굴식물은 쥐도 새도 모르게 꽃봉오리의 손을 놓을 것 같다.

 

뭘 모르는 꽃봉오리는 꽃은 원래 그렇게 혼자 피었다 가는 줄로 알 것이다.

뭘 모르는 꽃봉오리는 지가 활짝 피었다 가는 줄로 알 것이다.

  

그리고 말 할 것이다.

나 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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