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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2006 추석축문

by 발비(發飛) 2009. 9. 30.

乙酉年 秋夕에 孝孫 憲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 아버님墓所에서 삼가 告하나이다.

節侯가 바뀌어 八月 秋夕이 되어 封墳을 바라보니 그리운 정을 끊을 길이 없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묘지 주변을 보기 좋은 꽃나무들로 심어 가꾸어

때로 눈요기를 하실 수 있게 만들고 있으니 기다려 주십시오.

 

어머니의 여든셋 생신을 경기도 제부도에 있는 별장에서 자손들 30여명이 모여 축하를 하였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올해 古稀를 맞이하여 아들 憲律이가 미국에 있어 큰 잔치는 못하였으나 건강하시고,

孫子 憲律이는 美國에서 강의를 하는 교수가 되어 귀국해서

여름방학내 憲律이 내외와 똘똘하게 크고 있는 진교와  온가족이 여름을 잘 보냈답니다.

素映이는 100여일 넘는 기간을 인도 네팔 등을 두루 여행하고 왔답니다.

증손자 昇峻이와 赫埈이는 좋은 職場에 就業하여 勤務하느라 추석에도 못 내려왔으니 살펴주십시오.

 

손자, 손녀들이 모두 자기들 생활에 열심히 잘 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항상 살펴주신 陰德이라믿습니다.

 

이 좋은 날에 삼가 잘 빚은 술과 여러 가지 飮食을 정성스레 장만하여

할아버지 할머니께 올리오니 맛있게 잡수시기 바랍니다.

 

歆饗하옵소서

 

 

그러고보니 참 오랜만이다.

작년 추석에는 뭘 했을까?

 

곰곰히 생각하고서야.. 찾아낸 답.

작년 추석때는 연화도, 욕지도... 소매물도, 섬 투어를 했었다.

거의 해마다 추석때가 되면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마음이 아프면 여행을 떠났었는데...

 

2006년 추석때는 여행을 다녀온 직후였나보다.

큰집 오빠가 한글축문을 써서 성묘하였던, 그때도 인상적이었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참 인상적이다.

 

인상적이라는 말은 ,

그것이 좋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이미지로 각인이 된다는 말이다.

 

내가 살아오고, 자라온 나의 환경이 인상적이다.

주위에 참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렇게 추석때 축문을 쓰고, 그 축문을 보다 더 잘 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정말 조상들이란 오빠의 축문처럼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축문을 읽고... 그것에 감동하는 마음때문에 풀 포기에 물 주는 일을 특별히 생각하는 나는,

얼마나 어떻게 다른 것일까.

 

2006년과 2009년 사이에 큰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 아래, 큰 아버지만 계셨는데, 이제 큰엄마도 함께 계신다.

좀 더 구체적이 되었다.

그러니까 큰 엄마만이 내게는 실존에 가깝다.

다른 분들은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모두 돌아가셔서 거의 기억이 없다.

그래서 조상이라는 말에 가깝고, 큰엄마는 가족이라는 말에 가깝다.

 

그 의미는 추석과 어떻게 연관되어 다가올까.

 

어제 학교를 가는 길에 선생님을 만났었다.

자연스럽게 추석때 어디로 가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안동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문득 선생님께 여쭤봤다.

안동출신이 있나요..

그러게.. 안동은 그럴거야.. 꽤나 관념적이잖아.

그러고보니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러네..

하시더라..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얼마나 깨부숴야 저 축문과 같은 죽어도 버리지 않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압도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은 나쁘고 좋고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무엇이 깨지 않고는, 되지 않을 일일터인데...

깨고자 하는 것이 나의 문제뿐만 아니라

핑계를 대자면 적어도 나는 나의 조상까지 포함된 내가 너무나 확고하다는 느낌이다.

 

어느 해 축문은 나를 감동시켰는데,

올해 다시 그 때의 축문은 갑갑하다는 느낌이다.

 

이번 추석에는 다시 성묘를 간다.

아마 큰집 오빠한테 혼이 날 것이다. 일년에 한 번 그것도 못 와서 몇 년만이냐고...

그리고 성묘때 나를 뒷 줄에 세울 것이다.

앞 줄에서 읽는 축문에 난 또 어떤 느낌일까.

 

좀 만 더 성숙한 느낌으로 내게 축문이 오길 바란다.

그냥 틀이나 관념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무엇으로 내게 왔으면 좋겠다.

모두들 이제는 아니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서 각자의 어디에 숨어있었을 축문의 흔적을

꺼내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발견하고 증언하는 어떤 단서같은 것이 발견되었으면 한다.

그럼 21세기 마지막 자락의 후손처럼 나는 하기 힘든 증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죽고 없어 만나도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공허함처럼

공허한 느낌의 한 가닥이 아니라,

풀리지 않던 무엇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증언하는 그런 날이 되길 바란다.

 

추석에 대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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