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에는 관계의 유효기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추석이라 성묘를 갔다.
내가 기억하는 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큰아버지는 언제나 산소의 모습으로 계셨다.
아주 어릴 적부터 추석때가 되면 언제나 그 곳에 계셨다.
올해는 뭔가 달라졌다.
똑같은 모습의 큰아버지의 산소이지만, 작년에 돌아가신 큰엄마가 큰아버지와 합장을 해서 함께 산소가 되어 계셨다.
성묘를 간다는 것은 조상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큰엄마는 내게 조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이라는 실존에 훨씬 가까웠다.
촌수로 따지자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까울테고, 큰어버지가 가까울텐데...
그렇다고 큰엄마가 계실때 살갑게 함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합장을 한 큰엄마의 산소에 잔을 올리는 데 나도 모르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났다.
죽음이라는 문을 열고 넘어간 큰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문 밖의 세상이 어떤지와는 상관없이 문을 열고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못하는 세상을 가신 분이기에,
죽음이란 진정한 이별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감정에 겨웠을 것이다.
관계의 유효기간은 얼마일까.
보다 더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흐르는 시간,
또 살아가는 시간,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는 어쨌든 함께 있다는 것이 맞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보다 더 멀었던 사람보다도 멀어지는 것.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큰아버지를 큰엄마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더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지금은 큰엄마의 죽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다.
모든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더는 감정적이지 않는 단계가 온다.
내가 만약 죽은 사람이든 산사람이든 그사람에게 감정적이라면..
감정적일 필요가 없는데...
그 사람에게 이별을 말하고, 관계의 유효기간을 묵묵히 보내면 된다.
마치 깊숙히 넣어둔 음료수가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었을 때 가차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유효기간안에는 아주 깊숙히 넣어둔다.
그것만 지키면...
관계는 끝날 수 있다.
보다 더 먼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보다 더 가까운 사람을 보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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