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
김언
꽃들은 다 그리고도 남는 꽃들
나비가 앉았다 간 뒤에도 마저 흔들리는 나비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애벌레가 기어오르다가 슬몃 흘리고 간 애벌레
바람이 핥고 가고 햇볕이 남김없이
빨아들이고도 남는 햇볕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 모두가 여기 있고
아무도 밟지 않은 이 연기를 타고 올라간다
다 자란 뒤에도 더 자라는 뱀이 기어간다
꽃들은 다 그리고도 남는 꽃들
나비가 앉았다 간 뒤에도 마저 흔들리는 나비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애벌레가 기어오르다가 슬몃 흘리고 간 애벌레
바람이 핥고 가고 햇볕이 남김없이
빨아들이고도 남는 햇볕
살랑살랑 나뭇잎을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 이 모든 것들은!
남아도는 것, 잉여이다.
꽃이 남기고 간 것이 꽃이며, 애벌레가 남기고 간 것이 애벌레이며, 햇볕이 남기고 간 것이 햇볕이다.
나는 그것을 잉여라고 한다.
슬프다는 잉여이다.
외롭다 또한 잉여이다.
힘들다 또한 잉여이다.
슬프다 외롭다 힘들다...
이것뿐만 아니라 즐겁다 행복하다.. 좋아 또한 잉여이므로 현재 이것들은 이미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여기 남아 있는 것은 다 자란 뒤에서 자라고 있는 뱀일 뿐이다.
잉여는 웃자람이며,
변종이다.
잉여는 우물과 같다.
이미 두레박에 담겨 본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물과는 달리
아직도 우물에 남아 내가 들여다 볼 때마다
보여주는 꼴이라니...
출렁이지도 못하는 것이 울퉁불퉁한 얼굴을 비추고,
흐르지 못해 소리내지 못하는 것이 내 소리를 과장되이 퍼트리고,
넘치지도 마르지도 못한 채
그저 어둡게 웅웅거리는 우물이다.
본질이 사라진 잉여는 쓰임이 없다.
이 순간,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이미 형체와 본질이 사라진 잉여, 뱀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변종생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
책상, 의자와 같은 물리적인 것들과 희노애락과 같은 정신적인 것들과 그것을 표현하는 얼굴을 위시한 몸덩어리까지 모두가
잉여임을....
이미 그것들은 바람을 타고 사라졌음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변종생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나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본질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我...나를
訝...의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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