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시편- 아내를 보내는 조시(弔詩)
강우식
서시
아내는 살아 숨쉬는 돌이고 흙이다.
나와 한평생을
하늘의 별똥별로 흐르다
갑자기 귀환하는 스타트랙처럼 떨어져
바이칼의 물이 되었다.
1. 바이칼을 가며
아내는 바이칼의 딸이었다.
바이칼의 물에서 태어나서
우랄알타이산맥의 바람을 먹고
푸른 초원을 가르며 자란
피의 내력이 있는 여자였다.
바이칼의 여자여
너는 죽었다.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
영원히, 나와 헤어져야 한다.
지리산 칠선계곡에서 만났던 바위처럼
일생을 한 사내를 만나
거센 물살 속에서도 뒤집히지 않던,
죽어서도
천만년 살듯이 시시콜콜 볶아대던
따개비 같은 여자여.
너는 유목민의 딸이었다.
마음에서 비우기 전에 떠나야 옳았다.
떠나라.
몽골의 나담 축제처럼
샤먼의 바람을 불러들이고
고비사막을 휩쓰는 바람의 신과
칭기스칸 골드 보드카를 들이키며
토네이도 모양을 취해서
나는 그대를 보내기로 했다.
축제처럼 흥겹게 춤을 추며
어떤 대목에서 하늘을 우러러
그냥, 그냥 목 놓아 통곡하며
바이칼의 물로 살아라, 살아라
빌며 작별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더 가진 것이 없다.
줄 것도 없다. 못 다한 사랑이
너무 한스러워 줄 것이 없다.
그대의 모든 것 다 품고 살다가 죽으련다.
떠나라. 바람의 순리에 따라서
어느 곳에도 머물지 말고
머리를 올 하나라도 남김없이
그대를 따뜻이 지운다. 그만 떠나거라.
2. 몽골항공 기내에서
올란바토르로 가는 몽골항공은
한 마리의 독수리였다.
몽골의 푸른 하늘을 가르며
유유자적 날았다.
구름 그림자는 낮게 지상에 드리워
호수마냥 뜸 뜸 그늘 져 있고
몽골항공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짚처럼 툴툴대며
기류를 기르다가
훌쩍 한 마리 독수리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몽골반점이 있는 초원의 아들이다.
그 땅의 끝자락 한반도에서 그녀와 정분이 나
한 채의 게르도 없이 이 세상을 시작했으니
굳이 무엇을 탐하랴.
아내가 없자 세상은 모두 다
정거장 없이 떠도는 바람이었다.
빈자의 가벼움이 찾아왔다.
다시 새처럼 홀가분해졌다.
이제 나는 그대의 유골을 품고
고향으로 간다.
백화나무가 우거진 정다운 숲과
어머니의 품 바이칼로
몽골항공을 독수리처럼 타고 간다.
3. 국립공원 테르지
올란바토르에 내렸다. 하루라도
이 무질서한 온갖 매연의 분지에
아내의 혼백을 눕힐수 없었다.
블루베리가 풀숲마다 잘 익어가는
국립공원 테르지로 갔다. 테르지에 오자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내가 숨 쉬는 것을 느꼈다.
어디선가 마두금(馬頭琴) 소리가 들리고
초원을 흐르는 그 음조에 따라 그녀가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낙타 위에 앉으면 하늘이 더 가까워진다는
몽골 속담처럼 낙타를 타고
별들이 더 가깝게 내려앉는
흑요석의 신비한 대륙의 밤이 왔다.
하늘이 마련해 준
마지막 별리의 밤이었다
별들은 그동안 어디에 숨었다가 오는지
우박 떨어지듯 우루룩 우룩 쏟아졌다.
그 별들은 살아생전에 내게 보여준
아내의 말똥말똥한 눈동자였다.
청순하고 영롱하게 빛났다.
아마존의 숲속 롯지에서도
마추피추의 정상에서도
아프리카의 끝자락 케이프타운에서도
못 보았던 별이다.
나는 마른 쇠똥 냄새가 풍기는 풀밭에 누워
그 별들을 다 가슴에 받으며
그래 그래 너는 내 마음의 하늘자리에서
밤마다 눈물어린 별빛으로 돋아나서
타는 소금밭, 쓰린 형벌로
내 아린 가슴을 더 아프게 하여 다오.
이대로는 도저히 빈손으로 떠나는
너와 작별할 수 없으니 그리하여 다오.
블루베리에 소주를 칵테일 해 마시며
밤새도록 아내의 영혼을 불러
넋 놓고 앉아 푸념을 했다. 술주정을 했다.
4. 울란바토르-이르쿠츠크행 국제열차
너를 떠나보내기로 한 바이칼은 아득타.
울란바토르- 이르쿠츠크행 국제열차는
그 옛날 칭기즈칸의 기마병처럼
초원의 한 자락에서 한끝으로 내달렸다.
나는 열차 속에서 어느 해의
서울에서 해남까지 남도 여행을 떠올렸다.
파릇한 보리 싹들이 초원의 빛으로 짙푸른
그 길에서 그대가 부르던 허밍코러스를 떠올렸다.
언제 다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으랴.
이제는 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국제열차의 바퀴처럼
내 가슴을 덜컥덜컥 흔들리게 했다.
이르쿠츠크행 국제열차는 노마처럼 갔다.
끝에서 끝으로 달리기만 했다.
아, 그 초원에서 평화롭던
양과 염소와 말들과 수많은 소떼와 낙타들이여.
내 사랑하는 여자는 늬들과도 이별이구나.
초원의 풀숲에 있던 블루베리와 산딸기와
이름 모를 버섯들과도 이별이구나
온갖 야생화들과도 끝이구나.
내 여자는 이미 저승에 간 사람이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꽃과 식물들,
초록을 본다고 심었던 아파트 베란다의
풀들과 관음죽과 안스러움 등속이
초원을 스치며 아련히 떠오른다.
풀꽃들은 살아 있고 주인 없는 슬픔이 물컥 인다.
이르쿠츠크행 야간국제열차는
나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하며 가기만 한다.
국경의 밤은 멀고 더디게 밝는다. 하지만
바이칼은 네 넋의 고향이다.
올란바토르-이르쿠츠크행 국제열차야
가자. 그저 노새처럼 슬프게 바이칼로 가기만 하자.
5. 백화나무
밤 열차 속에서 마치 흰 옷을 걸쳐 입은
무당으로 보이던 백화나무 숲들이
날이 밝자 끝없이 이어졌다.
백화나무들은 흰 피와 불꽃이었다.
나무가 아니라 신성한 빛이자 불길이었다.
샤먼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저 나무의 껍질을 벗겨
나는 이 세상 마지막 마지막 편지를 쓴다.
내 가슴 속에 있던 하늘이 무너졌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바람벽에 피 터지도록
이마를 박고 또 박는 후회가 앞질렀다.
내 가슴 속에 있던 땅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천만 길 지옥으로 떨어지는 번뇌였다.
이를 악물어도 슬픔이 새는 불면이 왔다.
자고 일어나도 이 세상 입맛은 쓰디썼다.
여자가 곁에 없으므로 해서 겪는
이 막막한 심정을
나에게 깨우쳐 주려고 너는 죽은 것 같다.
그 슬픔을 잊기 위해
살아있는 날까지, 살아 있는 날까지
그대를 더욱 사랑하기로 한 이 징역살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백화나무들은 그대의 영혼을 전송하려는
이웃들처럼 도열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흰 옷을 입은 백성들을 보았다.
같은 핏줄, 민족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다. 내가 아버지의 땅인
이 머나먼 이츠쿠츠크 바이칼까지 가는 것은
정화된 불꽃 백화나무로 그대를 확장해‘
뱃가루들을 바이칼에 뿌리려 함이다.
백화나무여 너는 내 여자의 헌신목이다.
6. 백화나무 차가버섯
5년 전이었다.
내 몸속에 독버섯만한 종양이 돋았다
위암이었다. 죽음이 찾아왔다.
내 탑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공기좋고 물 좋은 계곡을 찾는다고
백담사에 들어갔다.
죽음 앞에서 불탑이 무슨 소용이랴.
밤마다 몸은 천만근 늪으로 빠져들고
검은 피를 울컥울컥 쏟는
내 마음을 잠재울 부처는 없었다.
여린 나무에 와 더 요란한 바람이듯
잔가지 같은 실핏줄들이 파랗게 죽어 있었다;
하루하루 세상이 젖어만 갔다.
거기에 오직 흔들리지 않는
한 그루 백화나무 닮은 여자가 있었다.
하늘에서 사천왕상처럼 번개가 눈을 부릅떠도
시베리아의 혹독한 눈보라가 휘덮어도
끝내 살아남던 백화나무인 그녀가 있었다.
아내는 백화나무 숲속에서 자란
차가버섯으로 삼백예순날 차를 달였다.
그 물로 위를 다스리고
내 몸속에 바이칼의 정기를 불어넣었다.
실로 차가버섯보다 더한 정성이 나를 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백화나무마냥
검은 머리칼이 하얗게 세고, 진이 빠져
나보다 먼저 이승을 떴다.
삶은 우랄알타이 산맥의 눈사태였다.
순식간에 풍비박산 났다.
운명은 왜 이리 모질기만 한가.
7. 이르쿠츠크-예까제리나
이르쿠츠크의 예까제리나를 아시나요.
아내가 예까제리나였다.
백화나무 옹이로 옹공진 여자였다.
문신이었다. 사랑에 미친 샤먼이었다.
예까제리나, 백계 러시아를 휩쓴 혁명의 물결 속에서
유형지의 남편을 좇아 시베리아까지 왔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눈감았다.
그녀의 사랑은 혁명보다 강했다.
귀족도 신분도 팽개쳤다. 차갑고 힘들더라도
흰 눈의 사랑을 택했다.
막막한 백치미가 있는 여자였다.
부러울 게 없는 삶의 유혹도 뿌리치고
남편을 따라 이 서릿발 무지개 서는
유형지의 땅 이르쿠츠크로 와 살다 죽었다.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소서.
그녀가 흰 눈의 예까제리나였다.
혁명가의 아내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시베리아 동토보다도 더 황량한 사내에게,
풀 한포기 돋지 않는
유형지의 땅 같은 가난한 사내와
평생을 헌신하며 산 여자였다.
나 먼저 그대를 저승으로 보냈으니
무슨 할 말이 더 있으랴.
내 가난과 못난 어리석음을
하늘이여 불쌍히 여기시어 한평생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소서.
이 이르쿠츠크 거리에는
세상 여느 곳보다도 먼저 겨울이 와
소리 없이 우리들 사랑처럼 눈이 내리리라.
나는 그대와 더불어 예까제리나처럼
페치카 옆에 앉아 음악학교에서 들려오는
천사의 목소리 같은 코러스를 들으며
눈이 쌍이는 정교회의 종탑을 보고 싶구나.
단 한번만이라도 손잡고
털 외투속으로 매서운 바람이 스미는
이 눈보라의 시베리아 앙가라 강변을
둘이서 사박사박 걷고 싶구나.
8. 바이칼 水葬
바이칼은 대지의 자궁이다.
여러 강물들이 한 곳에 모이어
호수를 이루고
앙가라 강은 흘러 북해로 간다.
아내는 바이칼의 물이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
푸르고 깨끗이 순순한 물로 살다
죽어서는 다시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한량없는 서운함이 남아있지만
나에게는 퉁구스의 초원처럼
끝없이 넓고 큰 은혜의 땅이었던
그대의 죽음이 최선의 終天임을 안다.
이제 이 거울의 호수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그대를 뿌리마.
내 이 물녘서 육신의 꽃 흩어지게 함은
너를 잊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사랑이 바이칼의 신화로 남아
영원하기를 바람이니
바이칼 신의 딸 앙가라 전설서린
샤먼바위로 남기 위함이니.
아내여 이제부터는 울더라도
바이칼의 잔물결처럼 잔잔히 울고
햇살 아래 반짝이는 웃음 결로 살아라.
9. 또 바이칼 거대한 물
바이칼에 배 띄웠다.
아내의 뼛가루를 한 웅큼 허공에 뿌렸다.
샤먼의 주술 같은 바람이 흰 이를 드러냈다.
수면은 삽시에 안개꽃 천지였다.
꿈, 안개. 꽃이다.
환상의 수천억 개의 안개꽃이다.
만다라의 물로 낯색이 바뀌었다.
산산히 녹으면서 바이칼이 되고 있었다.
바이칼, 풍요로운 물로
대지 위에서는 나를 먹이고 살 찌웠듯이
그대는 온갖 물고기의 친구로서
이제부터는 그것들의 피와 숨결이 되어서
밤낮으로 호흡하며 떠돌리라.
아니, 바이칼이 되어, 바이칼이 되어
이 지상이 갈증 나 타들어 가고 목마를 때
석유보다 더 비싼 거대한 물로 남으리라.
세상이 다 입을 대는 젖줄인
어머니의 호수여
너는 갈릴리의 어부처럼 배를 띄우게 하리라.
지상에서는 늘 가난한 식솔의 일용할
따뜻한 마유주가 되었듯이
그대는 죽어서도 그리 살리라.
10. 다시 바이칼 수상
아내를 바이칼에 수장하자
푸르른 물결이 눈높이로 부풀어 올랐다.
마치 그것은 첫 데이트 때의바람에 부풀어 오르던 치마폭이었다.
작두날 타듯 파도는 일어나고
나는 그 위에서 일렁일렁 춤을 추는
백화나무의 그녀를 보았다.
물이 없으면 내 어찌 예까지 왔으리.
앙가라와 바이칼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
북해로 흐르는 영원한 사랑이 되듯
물 없으면 내 어찌 여기까지 왔으리.
그대는 한 그루 백화나무 되어
물속으로 침잠하며 팔랑팔랑 잎 손짓으로
나를 오라하고 있었다.
내 눈물 글썽이며 다짐하는 말
그래 가마, 그래 가마.
한 마리 산양처럼 살다 내가 가마.
산양은 늙어 죽을 때 되면
하늘이 맞닿는 까마득한 산정에 올라
아무것도 안 먹고 굶주리다가
떨어져 고결한 죽음을 맞이하듯이
떨어져 고결한 죽음을 맞이하듯이
바이칼 물에 스스로 빠져 나도 죽으마.
나 죽어서라도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그대에게 기어이 가고야 말리니
석 달 열흘을 가난한 육신 이끌고
오체투지 하듯 무릎 끌며 가고야 말리니
물이 없으면 내 예까지 어찌 왔으리.
11. 앙가라 강변
저물녘 앙가라 강변에 앉아
북극으로 서서히 떨어지는 석양을 본다.
가을이 오고 있다.
벌써 9월의 백화나무들은 노랗게 단풍든다.
눈이 오기 전 러시아의 연인들은
이 강변에 나와 결혼을 하고
눈보라가 쳐도 끄덕없는 집을 가진다.
나는 이미 늙었다.
집이 있고 먹을 양식이 쌓였더라도 춥다.
아내가 없는 것이 이리 삭신이 저린 줄은 몰랐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내 인생에도 겨울이 와
앙가라 강처럼 두껍게 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앙가라 강변에서
아내가 했듯이 네잎 클로버를 줍는다.
살아 있는 날까지는 앙가라 강줄기로 흐르며
그대를 추억해야 될 목숨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러시아정교회 종탑이 있는
앙가라 강변에서
그대를 찾듯이 네잎 클로버를 찾는다.
12. 자연사박물관 운석
바이칼에 유골을 뿌리고 와서
새까맣게 타들어간 마음으로
울란바토르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다.
거기서 운석 하나를 만났다.
그대와 나 별똥별을 찾아 들녘을 헤매던
유년의 꿈들이 어제 같았다.
우주 허공 수천 광년의 길을 떠나
몽골초원에 떨어질 때까지
저 운석의 본디 모습은
지구보다도 더 큰 돌이었는지 모른다.
돌의 살점이 불타고 떨어져서
찌들고 찌들어서 예까지 와 있었다.
아내가 없는 이 허전한 마음을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휘불려 갈
가랑잎 마음을
저 운석문진으로 누르며 살려 한다.
살다 이 세상 뜨는 날
그대 이 지상에서 별 하나로 떨어져
다른 별로 몇 천 광년의 긴 저승길을 떠났듯이
나 또한 가슴속 운석을 나침반 삼아
수천 광년의 우주 공간 속 미로를 누비며
별똥별이 되어 그대 사랑에
까맣게 인이 배도록 떠나려 한다.
나는 죽어서도
바이칼의 여자여
그대를 찾아 사랑하고 싶구나.
에필로그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이승에서는
그대와 이별을 할 수 없듯이
살아서는 바이칼에 가지 않으리.
이 세상에서의 그대와 맺어진
인연의 끈을 하늘이 이미 끊어놨으니
나 어찌 할 줄 모르겠노라.
세월이 아픔을 잊게 한다는
이웃들의 말의 잔치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의심하고 있노라.
살아있는 자는 살아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인간적인 위로 앞에서
오늘도 나는 고백하건대
햄릿처럼 끝없이 갈등하고 있노라.
나는 다시는 바이칼에 가지 않으리.
시인의 말
30년전 일이다. 연작시집 『고려의 눈보라』를 내면서 뒷말을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는 어느 때인가는 모든 사람이 읽고 눈물 글썽거릴 그런 장시를 쓰고 싶다. 우리 시에는 어쩐 일인지 그런 시가 없다. 가령 좀 통속적인 표현일는지 모르지만 ‘에반제린’ 같은 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감동적이어서 읽으면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이 땅의 한 서민의 사랑이야기 같은 것을 그려보고 싶다.” 무심히 쓴 몇 줄의 글이 어쩐 일인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미리 한 것처럼 나에게는 늘 일생의 부담으로 남아 왔었다.
얼마 전 나는 아내와 사별하였다.
아내가 죽고나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너무나 많은 부분들을 집사람에게 맡기고 이제껏 살아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절감하였다. 그 후 나는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 있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아니 시쓰기는 여기서 작파해야 되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제자 몇이서 내 슬픔을 위로한답시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몽골 바이칼 여행 계획을 세웠고 거기에 동참하게 되었다. 몽골 바이칼을 무심히 여행하면서 어느 순간 시심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나에게 시인으로서 할 일이 있다면 먼저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는 시를 써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우러났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내를 보내는 조시’를 만들게 되었다. 우선은 시를 다시 쓰도록 힘을 불어넣어준 제자들, 김보일. 신재경, 정광호, 허광봉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조시는 많이 있다. 그리고 그 조시라는 것들은 대개 규격화되어 있다. 누구누구가 죽어서 슬프다. 하늘나라에 가서 잘 살아라 어쩌고 저쩌고 뻔한 덕담으로 끝나는게 조시다. 나는 그런 조시를 쓰고 싶지 않았다. 좀 스케일이 크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슬픔이 은연 중 우러나는 시를 만들고 싶었다. 그 욕심이 우연찮게도 몽골 바이칼 여행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다. 어떤 영적인 힘에 의해서 참으로 신통하게도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시가 좋다. 나쁘다는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 시는 아내의 영혼을 가슴에 담고 몽골 바이칼로 쏘다니면서 가는 곳곳마다 아내를 위호 하는 마음가짐으로 쓴 시다. 아내도 내 마음을 알았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떠나보내는 한 남자의 고해성사다. 한편으로는 나의 ‘에반제린’이다. 또 시집 『고려의 눈보라』 뒤말에 썼던 장시를 쓰게 되어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은 것 같아서 개운하다.
참 긴 시이다.
시로서도 오랜만이고, 이렇게 긴 시를 만난 것도 오랜만이고, 이렇게 정성껏 두드려 본 것도 오랜만이다.
내가 떠들 말이 아니라 시인의 말도 함께 붙였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아침에 강우식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아침에 말이지... 아.. 죽는 줄 알았어."
그 말에 시를 찾아 읽었다. 나도 아침에..
그리고 아, 죽는 줄 알았다.
시인이라는 사람은 멋지고,
시인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시는 더 멋지다.
시는 언제나 가장 깊숙한 곳을 더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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