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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신석정] 소년을 위한 목가

by 발비(發飛) 2009. 11. 25.

소년을 위한 목가(牧歌)

신석정
 
소년아
인제 너는 백마를 타도 좋다.
백마를 타고 그 황막한 우리 목장을 내달려도 좋다.

한때
우리 양들을 노리던 승냥이 떼도 가고
시방 우리 복장과 산과 하늘은
태고보다 곱고 조용하구나.

소년아
너는 백마를 타고
너는 구름같이 흰 양 때를 더불고
이 언덕길에 서서 웃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웃으며
황막한 그 우리 목장을 찾아 다시 오는 봄을 기다리자.

 

몇 주가 되었을까?

아버지는 내게 시낭송 시디를 부탁하셨다.

요즘에도 시낭송 씨디가 있을까 하면서 찾아보니.. 신기하게도 있긴했다.

 

그리고 지난 주 아버지를 찾아갔을때

아버지는 아주 만족스럽게 시낭송을 듣고 계셨다..

좋다면서.

정말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맙소사.

아버지가 그렇게 시를 좋아하시는 분인 줄 몰랐다니..

사느라 그러셨구나 하는 생각에 뭔가 울컥했다.

 

좀 전에 전화가 왔다.

시낭송을 듣지만 시 전문도 함께 읽고 싶다는 것이다.

하시면서 맨 먼저 말씀하신 시가 <소년을 위한 목가>이다.

어눌한 발음으로 신. 석. 정. 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한 두편이 아니란다.

전문으로 보고 싶은 것이...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말과 행동이 어눌하시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각과 행동으로 삶을 견디시는데..

최소한의 것 안에 '시'가 있는 것이다.

 

소년아
인제 너는 백마를 타도 좋다.
백마를 타고 그 황막한 우리 목장을 내달려도 좋다.

한때
우리 양들을 노리던 승냥이 떼도 가고
시방 우리 복장과 산과 하늘은
태고보다 곱고 조용하구나.

소년아
너는 백마를 타고
너는 구름같이 흰 양 때를 더불고
이 언덕길에 서서 웃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웃으며
황막한 그 우리 목장을 찾아 다시 오는 봄을 기다리자.

 

 

그런데 이 시가 정말...

소년아 .. 인제 너는 백마를 타도 좋다.

......

아버지를 위한 슬픈 시 같다.

아마 치열한 삶을 살아내신 아버지의 지금 시간이야말로 소년이 백마를 타고 달리는 목장의 모습이 아닐런지.

치열할 때마다 꿈꾸었던 시의 시간과 시의 공간이 아니었을런지.

 

아버지는 시를 읽으신다.

아버지의 딸은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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