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인권이라는 가수의 열렬한 팬이다.
그렇다고 그의 팬클럽에 소속되어 있거나, 무엇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분의 석방을 기원했고, 그 분의 노래를 다시 듣을 수 있기를 기원했을 뿐이다.
그가 돌아왔다.
돌아온 그가 눈물나도록 반갑다.
오래전 그의 노래로 하루를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끝없는 다독거림이 느껴진다.
그의 노래에 골육인 가사와 음성,
가사들은 바닥이 아닌 것이 없고, 삶이 아닌 것이 없다. 삶을 유지해야 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말한다. 스스로에게 듣는 이에게...
그의 목소리는 그의 나이들음과 함께 변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나이들음과 비례적이라서.. 과거 그의 목소리보다는 점점 갈라지고 있는 거칠어지고 있는 호흡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전인권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가 돌아온 첫 무대의 동영상을 감상했다.
삼년전쯤 그의 콘서트에 가서 그가 부르는 락이라는 쟝르를 그의 건강상태로 소화한다는 것이 일종의 전쟁임을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순간을 전쟁 치르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바닥이 드러나 보인다. 그때도 바닥이 보였고... 지금 이 동영상에서도 그의 바닥이 보인다. 언제나 바닥이지만 또한 언제나 바닥에 서 있다.
돌아온 전인권을 보면서 '오스카 와일드'를 생각했다.
<행복한 왕자>라는 아름다운 동화를 쓴, 그리고 희곡들... 소설들.. 그의 일생을 탐미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의 마지막 저서라고 할 수 있는 <옥중기>를 보면 그도 바닥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언제나 바닥에서 부터 시작한다.
바닥에 있을 때라야만 모든 것을 우러러 볼 수 있으며 사랑할 수 있으며,,, 그렇지만 밟힌다.
오스카 와일드의 일화가 있다.
하루는 오스카의 아들 시릴이 <욕심많은 거인>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왜 눈물을 흘리세요?" 하고 물었단다.
오스카 와일드는 "정말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난단다." 가고 대답했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 시대의 전인권이다.
물론 예술이라는 쟝르 중에서 문학 작가와 대중가요 가수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가 내어놓은 작품들과는 별개로 오스카 와일드의 인간적인 결함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동성애 등과 같은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나머지 몇 달을 전전하다가 죽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돌을 맞았더랬다.
나로서는 전인권은 오스카 와일드와 같은 선상에서 보인다.
좀 살만 할 때, 그의 노래는 멋지다.
하지만 삶이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 거친 목소리와 호흡은... 그 찢어진 결들은 내 몸을 둘러 해체된다.
필요한 곳으로 스며들어 다독인다.
한 발자국을 움직일 수 없을 때 나의 거친 호흡과 맞추어 주며,
눈물조차 나오지 않을 순간에 눈물을 흘리게 해주며,
... 아 ..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정이다.
안타깝다.
그의 삶과 죽음과 짐이...
누구나 인간적인 결함이 있다.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결함이 누구도 드러내 보이지 못한 살 속 깊은 곳에 쳐박혀 있는 무엇인가를 꺼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인간적인 결함이 적은 사람들은 결함 덩어리인 바닥에 깔린 인생들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까?
바닥을 치고 있는 인간들이 소녀시대의 '지'를 듣는 것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이미지 관리에 연연하는 인간들에게 절대적으로 인간적인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갖고 있는 갈등의 원인이자 우리가 덮어놓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적! 이라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로서는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시점에 봉착하면,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를 읽거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드라마 연작 <십계>를 보거나, 전인권의 <새야> <걱정말아요 그대>
를 듣는다. 그들의 고통을 듣고 보면, 견딜만해진다. 인간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만나면 나도 인간적이구나... 인간이구나 하고 안심하게 된다. 살아낼 힘이 생긴다.
전인권, 그가 돌아왔다.
동영상에서 그의 목소리는 더욱 갈라지고, 리듬은 더욱 사라지고, 목소리의 원형만이 남아있다.
호흡이 보인다. 마치 삶의 증거인 것처럼.
이 동영상을 본 뒤, 똑같이 <사랑한 후에>의 십년 쯤 저의 그의 라이브 동영상을 봤다.
삶은 그런 것이다.
살아갈수록 더욱 피폐해지는 것이다.
-어제 오랜만에 만났던 나이차 많이 나는 언니가 안정되어보여서 좋다고 했더니... 나이 먹으며 이래야돼... 하고 윤기나는 얼굴로 웃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피폐해지는 삶에서 삶이 소진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삶이 다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 모습에서 삶에 여운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순간이 삶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리고 어느 날 완전 소진된 모습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박수를 쳐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삶에게...
바닥에서 인간적으로 충실했던 그의 삶에게...
그가 살면 살수록 차지했을 더 차고 습한 바닥. 최악의 바닥에서 생산했을 몇 곡이 있다고 한다.
그 몇 곡은...
나도 살면 살수록 더 차가워지고, 더 습해지는... 이 순간들을 이끌어줄 것이다.
더 거친 숨소리와.... 더 갈라진 목소리로...
난 그가 돌아와서 한없이 기쁘다.
이제는 노래방에서 "그 분의 석방을 기원하며!"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삶을 위하여!!!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림자가 되어 들여다본다 (0) | 2009.06.18 |
---|---|
매표소 (0) | 2009.05.17 |
어디가 위인가요? (0) | 2009.04.09 |
조작된 긍정 마인드 (0) | 2009.04.07 |
영혼도둑 (0) | 2009.03.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