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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어디가 위인가요?

by 발비(發飛) 2009. 4. 9.

 

"씌여진 데가 위로 가나요?"

"네."

"왜 할 때마다 헷갈리지.."

 

큰 사무실 안에 여러 부서가 칸을 나눠서 쓰고 있다.

주문을 받아야 우리 부서에 팩스가 놓여있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 팩스를 보내려면 우리 사무실로 온다.

아마 팩스를 보내려는 사람의 반정도는 이런 질문을 한다.

혹은 질문을 하지 않으면 조금은 불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기억을 상기시키느라 뻘쭘하게 서 있기도 한다.

어디가 위로 가야하나...

글씨가 있는 곳이 위일까? 아니면 뒷면이 위일까?

 

나도 그렇다.

팩스를 보낼때라던가.

복사기에 용지를 넣으면서 복사를 할 때라던가.

이면지를 복사기에 넣을 때라던가.

항상 고민하게 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들 그렇다.

그보다 더 어려운 과업(?)들은 잘 처리할 뿐만 아니라, 일을 도모하고,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은

마치 기계인 듯이 잘 처리하면서

작은 팩스 앞에서 더 작아지는 모습이라니...

 

"맨날 잊어버려서요.."

하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가는 모습을 본다.

 

그래.

난 세상에 어려운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동원하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어려운 일은 언제나 끝이 있었어.

마침표를 찍기가 좋지.

그런데, 어렵지 않은 일들이 문제야.

팩스의 윗면을 언제나 고민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은 일들은 언제나, 언제까지나 고민하게 만들고 갈등하게 만들고 나를 작게 만든다.

그렇다고 거기에 몰입하지도 않는다.

 

삶의 자잘한 것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자잘한 갈등에서 입은 흠집들이 언젠가는 커다란 이물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날씨가 좋다.

꽃들이 피었다.

빨리 걸었더니 얼굴에서 땀이 났다.

이런 봄날의 작은 따스함이 나를 갈등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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