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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조작된 긍정 마인드

by 발비(發飛) 2009. 4. 7.

참 이상한 일이다.

 

지난 한 주를 경남 고성에서 열리는 세계공룡엑스포 현장에 있었다.

회사 직원들이 열 명 넘게 그 곳 아파트를 빌려 합숙을 했었다.

여자는 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같이 온 직원들이 나와 막연한 사이도 아니었다.

 

내면적 낯가림을 하는 나로서는 이 상황이 결코 편할 리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평화로웠다.

그건 마치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의 느낌과 같은 것이다.

 

언제나 긴장이 되고, 한 끼를 해결하는 것과 잠자리가 항상 걱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은 한 없은 평화를 느꼈던 그 때와 비슷한 감정라인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었다.

아마 난 그 곳에서 내내 아름다운 미소를 누군가에게 날렸으리라.

 

너무 추워서 걸린 감기.

지금도 기침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있지만, 감기보다 중요한 뭔가 새로운 기운이 몸을 돌고 있다는 것.

아마 이 감기 또한 내 몸을 지배하고 있던 바람직하지 못한 기운들의 마지막 용트림이 아닐까 하며...

 

무엇을 어찌하였길래...

 

아침에 일어나면,

13명의 남자들이 목욕탕을 쓰지 않는 시간을 틈 타 얼른 씻어야 한다.

이거 스릴 있다.

 

-틈바구니에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해결하는 것.

 

그들이 아침 식사를 하러 가면 아침을 먹지 않는 나는 밀걸레를 가지고 무조건 민다.

깨끗히 할 필요는 없다. 가장 간단한 밀걸레질. 이것도 스릴있다.

 

-우렁각시가 된 느낌.

 

현장에 가면, 현장사무실을 셋팅한다.

나의 주요업무는 표를 파는 일, 매 시간마다 정문 입장객의 수와 현장 판매분으로 공연을 할 지 말 지를 결정한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감독의 목소리... 매표소 진행할까요?

 

-분명 나, 매표원인데... 내게 물어? 존재감이 있다는 것.

 

한 회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공연장에 있던 감독들이 모두 사무실에 모인다.

과자를 풀어놓고, 난로에 무릎을 대고 도란도란 모인다.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배우의 액션이나 화면 수정사항들을 이야기들을 심각하지 않게 나눈다. 일 안에서 자연스런 감독들과 함께 있다는 것.

 

-나에게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 내게 기운이 있다는 것을 감지.

 

표 주세요!

몇 장 드릴까요?

어쩌고 저쩌고, 난 매표원. 재미있다. 그들은 내가 매표원인 줄 안다.

 

-나의 신분?을 숨긴다는 것,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왕자 같다.

 

사람이 없다. 오후 공연이 시작되었다.

천막 밖으로 나가 바닷가 바람과 바다 가까운 곳의 햇빛을 쬔다. 썬그라스를 낀다. 광장 한 가운데 앉는다.

 

-세상과 분리되는 느낌. 그러면서 한 가운데 있는 나.

 

영상이 바꼈다고? 배우의 액션이 바꼈다고?

그럼 들어가봐야지... 표 파는 일을 잠시 누군가에게 맡기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캄캄하다.

한 곳으로 꽂힌 조명의 시작점에 낯익은 감독이 무전기를 손에 들고 있다.

조명의 끝점에 배우가 관객을 주도하고 있다.

 

-관객도 배우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보고 있다는 것, 집중한다는 것.

 

하루 공연을 마치고, 돈도 세고 입장객 수도 분석해보고... 두런두런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시골은 차 타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언제나 하는 말!

"벌써 다 왔어요?"

 

-하루의 끝이 짧다는 것, 하루가 가볍다는 것.

 

남성들을 피해 시골 목욕탕에 들어간다. 어느 집 안방 만한 목욕탕에는 언제나 두 세명.

어쨌든 아는 사람들 사이에 낀 모르는 사람인 나.

 

-사우나가 아니라 공중 목욕탕. 불편하지 않은 불편함.

 

저녁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시집 한 권과 PMP에 저장된 영화를 놓고 고민한다.

때로는 둘을 동시에 보기도 한다.

 

-둘 밖에 없는데, 그 둘이 모두 사랑하는 것일때... 나도 모르게 어깨가 뒤틀며 부리는 앙탈... 좋아...

 

12시가 되기도 전에 시집과 영화에 지친 내가 얇은 패드 한 장을 깐다.

커튼도 없는 창으로 훤히 보이는 길을 보며  눈을 감는다.

 

-엄청난 시골에 있으면서 세상 한 가운데에 누워있는 듯한 요상함.

 

지난 일주일 동안의 하루다...

일주일내내 같은 일, 같은 음식, 같은 시간.. 모든 것이 같은 날이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이렇게 지냈을 뿐인데,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몸에 새로운 무엇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REFRESH!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어쩌면 또 내려가야 할 지도 모르겠다.

SOS!

지금은 비상시국이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기 싫은 척, 생색을 내고.. 혹 가게 되면 좀 더 전략적으로 뭔가 만들어야겠다는 도모도 하면서...

 

그렇더라도 고성에서 가져온 이 지겨운 기침에서는 해방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직 내 안에 나쁜 기운이 다 걷어지지 않은 까닭이라고 생각하자.

 

조작된 절대 긍정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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