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하는 딸들*
김경주
그것을 속기하는 동안 겨울이 왔다. 아홉 마리의 늑대를 허공으로 돌려보냈다. 조금씩 눈이 멀었다. 눈이 멀어서 파란 고양이과 동그라미를 자주 상상했다. 석간을 보다가 천오백 년 된 그녀의 머리칼을 발견했다. 천장을 열고 차가운 나방을 손바닥에 앉혔다. 나방 속을 떠다니는 얼음들이 연필심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들의 무덤을 생각해 나는 천오백 년 동안 그녀의 머리칼을 꾹 삼키고 있었을 거미의 결핵을 캄캄한 단어에 이식하다 잠들었다. '태양까지 올라오는 밤을 타고 온 새들은 머지 않아 눈이 된다' 나는 내 문장을 삶에 인용하다가 충격하는 힘이 있다. 친가에선 괜찮다면 곤충의 방언을 요령처럼 입속에 넣어주었다. 나는 다시 '발목'이라는 시를 천천히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발목은 파란 고양이나 파란 동그라미에 가까웠다. 그런데 천오백 년 된 그녀의 발목은 어디로 갔을까? 유빙 안에서 떠다닐 발목의 분속을 생각하다가 필자는 어떤 문맥으로 요양을 가야 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필자의 무덤을 상상하면 삶은 부사처럼 어디든 붙어먹었다. 거짓을 생각하면 눈 속의 고양이가 파랗게 울었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라고 속삭이면 문장들의 일식이 찾아왔다. 구름 속의 허공이 감정의 방위 위로 내려왔다. 나는 육방을 막고 문장 속에서 아흔아홉번째 털갈이를 시작했다. '무대륙' 이라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며칠동안 고양이들이 다가와 눈 안의 파란 형용사를 핥아주었다. 나는 손등으로 계기의 관절을 쓰다듬어주고 그것들을 내 마음까지 바래다 주고 싶었다. 드디어 눈이 멀었다. 유리 가루를 씹으며 누워있는 벌레들이 눈부신 휴식. 주택을 비운 철자들이 필자를 데리러 자꾸 찾아왔다. '그녀의 발목은 내 몸에서 조금씩 흘러나온 유빙이다' 깨어나서 나는 이 문장을 차려입고 '손톱 속에 얼어붙은 해변'을 문장에 엎질렀다. '당신없이 잠드는 이야기다**'라고 속기했다. 겨울은 시집처럼 얇아서 피의 봉합선을 훨훨 벗어나게 되었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 제목
**자크 스테른베르그의 콩트와 단편들을 묶은 모음집 제목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나의님은 갓슴니다
푸른산빗을깨치고 단풍나무숩을향하야난 적은길을 거러서 참어떨치고 갓슴니다
黃金의꽃가티 굿고빗나든 옛盟誓는 차듸찬띠끌이되야서 한숨의 微風에 나러갓슴니다
날카로은 첫<키쓰>의追憶은 나의運命의指針을 돌너노코 뒷거름처서 사러젓슴니다
나는 향긔로은 님의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은 님의얼골에 눈멀었슴니다
시가 써 있는 말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던 때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배우고 나서였다.
그즈음에 배운 시들은 모두 그랬다.
써 있는 대로 읽는 시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시는 이중 삼중으로 봉합된 모르는 어떤 것이었다.
천오백년이라는 시간을 넘나들며 아직도 살고 있는 시인이다.
천오백년이나 살아서 가늠이 안될 수 있다.
그 시간을 몇 줄에 다 설명할 수 없으니, 설명을 했다한들 알아들을 수 없으니.
천오백년 전 그녀에 대해 궁금한 시인은 시간을 거슬어올라갈 방법을 찾는다.
사람의 힘이 안되니 얼어붙은 것들을 찾아 냉동해제를 시키려고 하는 것일런지도....
천오백년 전 그녀의 이야기를 성립해가는 과정이다.
어떤 언어들을 사용하면 그녀가 온전히 그녀로 표현될 수 있을까?
시작은 천오백년전 그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처럼 ... 말도 안되는 것을 말이 되게 하는 전투일지 모른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에 나오는 여자들...
그 모두를 갖다 대어도 없는, 이 세상에는 없는 또 하나의 사랑해야 하는 딸들의 생성.
피 터지는 싸움
....
>>>
::::::
이것과 다르지 않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주]시집 기담.. 공간의식, 언어의식, 존재의식 그리고 타자 의식 (0) | 2009.04.07 |
---|---|
[김경주] 무릎의 문양 (0) | 2009.04.06 |
[김경주] 시집 기담의 프롤로그? (0) | 2009.03.26 |
[W.B.예이츠] 레다와 백조 (0) | 2009.03.25 |
[윌리엄 블레이크] 런던 (0) | 2009.03.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