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가 불편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이 찍혔다.
난 유성용의 팬이다.
그래서 난 그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 <여행생활자> <생활여행자>를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ebs 세계테마기행> 에서 그를 만났다.
그 전에 <여행생활자>를 읽었을 때, 우울하다.
그것은 그의 첫 느낌이었으므로... 그냥 그렇게 읽다가
티비<ebs 세계테마기행>에서 그를 보고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그의 사적인 모습!
방송임에도 그는 완전히 私的! 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환한 웃음이 그랬고,
풍경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랬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을 읽었다. 이건 또 뭐야?
그리고 또 <생활여행자>를 읽었다. 아....이건...
그 책들 사이사이에 이란을 다녀온, 멕시코를 다녀온, 그리고 부탄왕국을 다녀온 유성용을 또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보았다.
방송을 할 때마다 유성용이 그 전 방송에 나왔던 방송파일을 다운받아서 다른 곳에 있는 그를 함께 만났다.
그 곳에서의 그는 항상 같은 모습이고
책에서의 그는 항상 같은 모습이다.
책과 영상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따뜻하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고, 개방적이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같은 사람이 다른 이유.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어떤 이가, 세상에 따귀를 맞았다 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은 따귀를 맞은 세상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세상이 아닌 여행지로 떠났고,
세상이 아닌 곳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곳이 만약 여행지가 아니라 그가 살아야 할 세상이라면... 다를 것이다.
그가 살아야하는 생활에서 그는 여행자, 타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
뜬 인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인간이 세상에 따귀를 맞았다 했다.
그런 인간이 쓴 책을 본다는 것은 심기가 불편한 일이다.
왜냐면, 너무나 인간적이지 않은 인간도 가끔 세상에 따귀를 맞고 사는데
그걸 안 맞은 척 모른 척하는데
읽는 내내 그런 기억들이 자꾸 떠오르니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었던 한 때가 확고한 모습으로 떠오르니까...
심기가 불편하다.
불편해서 걸린다.
믿었던 이에게 발등을 찍힌 것처럼 멍하다.
자유를 얻을 줄 알았는데, 감옥에 갇힌 느낌이다.
쏟아지는 장대비로 도가니 같던 지상이 일순 열을 식힐 때 돌연 풍겨오는 비릿함은, 어쩌면 폭염 속 상처의 기억보다 더욱 선명한 일! 세상에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열정과 진정성을 주장하고 나서지만, 그것들이 식을 때에야 그 속내가 드러나는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안팎을 극진히 살피지 못하고 다만 제 사랑의 열정에 갇힌 사랑이었다면 식을 때 분명 물컵 같은 슬픔이 있으리.
나는 거기 서서, 꿈도 없이, 백 년동안 잠을 잤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느끼지도 못할 만큼 진동도 없이 눈을 떴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그가 떠나고 없다는 것.
(......)
오직 잠으로, 그를 만났던 새벽의 남은 잠을 채워야 했다.
커다란 배낭을 껴안은 채, 지금 내 차에서 시달리며 잠꼬대를 하고 있는 이 여자, 어쩌면 이 여자가 그리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두렵다. 무람없이 무에 젖어 내 뼈들에 살점이 부풀어 달라붙고 있다. 내 몸은 무엇인가? 오히려 마음이 없다. 나는 초라해진다. 네 자리를 마련해두마. 네가 와서 도끼로 그 나무의자를 내리찍어라! 내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우리 내일 점심이나 함께할까? 허리꺾인 나무들은 누워서 무얼하나.
최초의 푸른 빛(......)
그저 파란색과는 다른 빛. 맑은 듯 하면서도 끝도 알수 없는 나락 같은 깊이가 흐르고, 신비하면서도 무서운, 그래서 어쩌면 소멸의 사연이 숨어 있는 빛. 그러나 울부짖음 같은 건 다 휘발되고 한없이 고요한 비현실적인 빛.
(......)
너무 환한 곳에서는 푸른 빛이 사라진다는 걸 나는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를 편협하게 사랑하고 그 아픔에 미친 사랑의 노래를 부를 때면 그 빛은 내 곁에서 사라졌다가 그 노래가 끝날 즈음이면 내곁에 다가와 다시금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가시돋친 사연들로 상처 입고 바짝 말라 뿌리까지 꺾인 나무들도 그 빛에 젖으면 강물처럼 흐르곤 했다.
그리고 이곳은 어둠이다, 어둠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냥 담벼락에 기대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내 속에 남은 빛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
저 사람이 너일 수 있도록,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의식이 깜빡깜빡하더군요. 그러던 중에 그대에게 인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때 고작 몇 마디 간신히 나온 소리가 이런 거 였잖아요. "나 이러다 죽겠다." 그러고는 눈앞에 뿌옇게 변하는데 의식이 희미해젹는 중인데도 약간 짜증 같은 것이 일더군요. 왜 이렇게 죽음이 내 몸뚱이를 팔딱팔딱 털어대는거야? 그러고는 다 죽은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깨어났잖습니까?
황량한 사막에 비질을 하고 싶습니다. 아침이면 간밤에 손질해둔 빗자루를 하나 들고 사막 한가운데서 홀로 비질을 시작ㅎ는 겁니다. 남겨도 남김없고, 바람 한 번 불면 사라져버릴 그런 무늬들이나 이렇게 저렇게 그려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지요.
집을 빼고 모든 걸 정리해서 다는 돌아오지 않을 먼 여행을 떠났으면 싶지만 속내는 정말이지 그냥 딱 하나, 그만 살고 싶어요. 하지만 죽는 것도 할 일은 아닐 것 같고, 그냥 살아야지 싶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게 살아야겠지.
나는 잠들어 있는 거보다는 깨어있는게 편한 사람이라네. 자네는 심란해하는게 싫어 늘 일찍 눈 붙인다고 그랬지? 부디 잠들어 있게니. 자네를 잘 지켜내라고.
자살에 대한 강박, 그건 은하계에 사는 인간들이 가진 극히 정상적인 편집증일 것이다.
(......)
앞으로 죽을 거라는 희망
그러니 아무도 좌절은 마라
다만 반짝이지 말고 이 지구별 체험에 깊이 있으라.
몇 번의 상황을 겪고 배움이 생기면 그 원칙을 별 회의없이 끝까지 잘 지켜나갔다. 간간히 연애를 하지만 그것은 그냥 연애였다.
(......)
남자들아, 함부로 제 속에서 순정을 길어올리지 마라. 순정은, 이토록 사랑과 상처 사이에서 기생하며 꿈틀대는 그대의 증상에 다름 아니니. 증상으로나마 제 욕망을 누리려는 마음은 더 없이 쓸쓸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생의 모든 내용들이 하나같이 증상 아닌 것들이 있을까. 어찌보면 증상이라는 것도 다만 살아 있는 동안의 체험이다.
그 증상이 다하면, 색색으로 물들었던 나뭇잎들처럼 슬픔도 없이 다 져 내리니.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놓쳐버린 것들, 그리고 친구도 소용없이 홀로 맞던 밤바람의 조악한 평화와 위안이 날 웃겼다.
나는 반.성.한.다.
'누구에게든 야속했던 쓰라림을 되돌려주지는 말자. 쓰러져도 죽지 않는다는 거, 그것만 알리고 가자.'
미친마음이 자기 안에서 펄럭이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자신의 바깥 세상을 공손히 바라보고자하는 마음마저 잃어버린다면, 그대가 지리산에 박혀 살든 혹은 여행자가 되어 이 은하게의 방방곡곡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든, 그건 다만 제 속에 갇혀 홀로 꿈꾸다 죽는 일.
매일매일 자문자답 속에 열심히 살아온 당신, 아무래도 너무 쓸쓸하다.
그는 제 몸이 온통 가시라고 다짐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가 사람들과 섞여 만들어내는 수많은 헛소동들은 가끔씩 애틋하고 가끔씩 뭉클해지기도 하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들도 있었다. 자신이 직접 새가 되어 허공의 깊이를 알리는 그런 존재로 여겨질 때가 그랬다.
한겨울에 얼음 계곡으로 뛰어드는 건 죽을만큼의 일은 아니래도 그건 분명 살아가는 일과는 거리가 좀 멀다.
마음껏 버릴 수 있다는 게 그렇지 못한 나라사람에게는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나.
떠나면 떠날수록 나는 점점 나에게 낯설어지고 반대로 내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낯선지를 모르겠더라구.
내가 누군가의 삶을 대신하고 살고 있다면, 나의 삶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주] 패스포트 (0) | 2010.05.21 |
---|---|
[박상우] 작가 (0) | 2009.07.28 |
[김훈] 바다의 기별 (0) | 2008.12.06 |
[이어령] 젊음의 탄생 (0) | 2008.11.26 |
프리다 칼로에게서 본 제 3의 눈 (0) | 2008.1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