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정호승] 수선화에게

by 발비(發飛) 2007. 9. 26.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사랑때문에 곪아터진 사람은 행복하다.

사랑때문에 밤을 새운 시간은 아름답다.

사랑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빛난다.

 

어느날 한 모임에서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주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도, 혼자서 짝사랑하는 사람도, 그리고 사랑은 하지만 사랑을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었더랬다.

그때 난 이렇게 말한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랑이라도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진정 혼자가 되었을때 생각나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건 축복이다. 함께 하는 사랑과 홀로 하는 사랑과  아픈 사랑... 그 어떤 사랑이라도 사랑이 없는 것보다는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어느 낯선 곳에 내가 떨어지더라도,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것으로 축복이다.

 

축복을 받고도 사랑하는 이가 없다고 외롭다한다.

사랑하는 이가 있어서,  함께 한 시간들이 있어서, 바로 옆에 무릎을 붙이고 있어서,  외롭지 않았던 시간이 얼마나 될까?

 

사랑하는 이와 무릎을 붙이고 앉아서도 생각한다.

너가 내 안에 있을까? 더 들어와라.

내가 너안에 들어간거니? 더 들어가고 싶어.

그건 이미 외로움이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 하루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말한 것처럼 하느님도 똑같이 느끼는 외로움이다.

 

당신은 항상 웃고 있군요!

당신은 항상 씩씩하군요?

 

어젯밤 밤새 그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린 것을 그들이 알까?

오늘내내 내리지도 않는 비에 온몸이 흠뻑 젖어버린 것을 그들이 알까?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세상에 외롭지 않은 것이 있으면 여기 나와라.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함이리라.

두 눈이 나만을 향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눈을 맞으며 비를 맞으며 둘러보면 나와 꼭같은 세상의 것들이 세상가득함을 아는 순간, 힘이 덜어짐을 알아챌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살아갈 수 있는 관건이 된다.

 

사랑때문에 곪아터진 사람은 행복하다.

사랑때문에 밤을 새운 시간은 아름답다.

사랑때문에 흘리는 눈물은 빛난다.

 

그저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정호승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인수]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0) 2007.09.28
[문인수] 식당의자  (0) 2007.09.28
[정호승]내 얼굴에 똥 싼 갈매기에게  (0) 2007.09.19
[기형도] 빈집  (0) 2007.09.17
[.....] 나는  (0) 2007.09.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