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달빛, 그 노숙의 날개
문인수
길이 막히거든 노숙을 해봐라
달빛 아래
나무의 낯선 낯선 이파리들이 눈앞을 저어 가면서 가장 먼 별들이 귀전으로 가슴으로 스며 내리면서
풀벌레 소리들 무수히 번져 에워싸면서
그대 겨드랑이에다가 하염없이 짜넣는
그 달빛이 무엇이 되는지
팔 벌리고 누우면 허수아비 같고
돌아누우면 좀 춥고
몸 웅크리면 섬같이 되어서
날고 싶을 것이다
달빛 아래
그 어디로 길이 열리는지
먼 타관으로 가서 노숙을 해봐라
길이 막히거든 노숙을 해봐라.
시인은 이 시를 15년 전에 썼다.
지금이면 어느 갈대밭에 누워 달빛에 두 어깨를 펴고 드러누어 갈대를 지키는 허수아비가 되어보는 것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일것이다
그런데, 그때쯤에 허수아비가 되는 일이, 노숙을 하는 일이 지금 느끼듯 행복한 일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못해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재미있어서 웃는다
속이 비어 웃는 내 소리가 배속에서 울린다
실을 다 자아내느라 속이 텅 빈 동그란 몸을 한 거미처럼, 거미의 웃음처럼 내 배 속에서 웃는 소리가 울린다.
내 웃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웃는 소리가 공허하다
그것은 길이 없다고 생각한 어느 날 하늘을 보면 잠을 자면서
별과 달과 갈대와 바람에다 날 내어놓고 추운 섬이 되어본다면
그렇게 길에 누워있다보면 어느 한 쪽으로 빛이 보인다.
난 그 곳으로 몸을 일으키게 된다.
그곳은 집이라는 것이지.
나를 가둬두던 집이 노숙을 하다보면 나를 세상으로 내 보내주는 비상구가 되는 것이지.
여행을 왜 떠나냐고 묻는다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난다고 그렇게 대답을 하고 싶다. 오늘은...
오늘밤 난 노숙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한다.
그리고 풀벌레의 음탕한 소리에 맞춰 달빛이 겨드랑이 사이로 스며드는 것도 느끼보고
달빛이 차가운 냉혈이라는 것을 혹 알게 되면
그때는 믿을 건 나밖에 없다면서 내 몸을 내가 꼭 껴안아 주기도 하고
너무 웅크리는 내가 미운 때가 되면 마치 세상을 내가 지켜야 할 것처럼 두 팔을 벌려 들판의 허수아비가 되어보기도 하고
빈 하늘에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내가 섬처럼 덩그렇다고 느껴지면 아, 난 섬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겠지.
그쯤이면 어딘가에서 빛 하나가 들어오겠지.
그럼 난 그 빛을 따라 아주 오랜만에 바쁜 걸음을 걸어가겠지.
마치 처리해야 할 큰 일이 있는 것처럼... 집에 가면 뭐든 다 가능한 것처럼
난 오늘밤 예상된 수순에 따라 노숙을 하려한다.
시인의 일정대로 말이다.
몇 년 전 노란 표지에 시인의 얼굴이 찍힌, 문인수 시인의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를 읽으며, 시인이구나! 생각했었다.
문인수 시인의 시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이지만,
정보의 장이라는 검색창에 두드려보아도 시집의 이름으로서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만 나올 뿐 시로 소개된 곳은 어디에도
없길래.... 인터넷이라는 마당 한켠에 자리 하나 마련해보았다.
식탁의자 이전에도 그는 언제나 식탁의자였다.
보여서 재미있는 세상
알아서 재미있는 세상
때로는 눈을 감을 수 있는 세상
늙고 싶게 만드는 문인수시인,
..............................................................나도 따라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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