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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문인수] 식당의자

by 발비(發飛) 2007. 9. 28.

식당의자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담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 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곽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내가 의자라고 치자.

그것도 하얀 프라스틱 의자라고 치자.

 

의자가 된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것이 궁금한데...

하얀 프라스틱 의자는 어디가 제자리인지 잠시 생각해본다. 잠시랄것도 없이 나의 자리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이다.

지붕 아래가 아니라 지붕 바깥이다.

처마 아래가 아니라 처마 밖이다.

 

나의 자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비나 눈이나 바람 따위의 것들을 피해서 처마나 지붕 안으로 들어갈 때

난 거기 두고 가도 된다.

내 자리는 바깥이다.

 

가끔 그들과 한 몸이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한 몸이 될 때 난 그들과 함께 장단을 맞춰 앞 다리 두개로 그들의 몸을 버텨주기도 하고,

그들이 나를 가지고 던지기 놀이를 할 때도 난 가벼히 내 몸을 날려주기도 한다.

그 때는 대부분 그들이 평화로울 때이다.

 

그런데 나의 역할, 너무나 타자지향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들의 기분이 나쁘면, 난 어떻게 되지? 걷어차도 흠집이 나지 않는... 그래서 함부로 던지게 되는 ...

혹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린다해도 나를 돌아다보는 이는 없다.

언제는 함께였지만 ... 뒤돌아보지 않고 나를 그냥 둔다.

그냥 둬도 난 그저 의자이다.

 

젖지도 얼지도 부서지지도 않는 의자라고?

 

아니네요.

비가 오면 난 젖고 그러나 내 몸 밖으로 끊임없이 빗물을 밀어내고

눈이 오면 난 얼고 그러나 내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온 몸을 꼭 붙들고

바람이 불면, 난 굴러다니고 그러나 제 자리에 오기 위해 바람에 몸을 굴리고

 

내가 삼초식당 앞에 놓인 하얀 플라스틱 의자라고 친다면,

너와 난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넌 지붕아래 살고 있고, 난 지붕 바깥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겠다.

 

차가운데 있더라도, 비바람이 부는데 있더라도 너를 기다리기라도 하려면

난 그 곳에서도 뭔가를 밀어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죽어도 그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의 걸레질을 기대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저 혼자서 밀어내고 있어야만 너와 잠시 한 몸으로 체온을 나눌 수 있겠다는 것을.

 

하얀 프라스틱 의자라고 친다.

난 하얀색 프라스틱 의자라고 인정한다.

 

혹 아는가?

문인수 시인같은 이가 내게 따사로운 눈길을 줄 수도 있겠다는...

잠시 내가 나의 입에 오를 수도 있겠다는... 

 

 

눈길이 따사롭다.

고맙다.

시인에게..., 내게 눈길을 준 시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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